김헌태논설고문

대한민국에 전세사기 피해가 일파만파로 확산하고 있다. 최악의 전세사기 사태가 우려된다. 그 규모나 조직적인 범죄 등 황당한 피해 상황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여기에 등장하는 용어도 ‘건축왕’, ‘빌라왕’ 등 참으로 놀라울 정도다.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사들인 주택도 있고 무려 2,700여 채의 주택을 보유한 건축왕도 있다. 전세사기 피해는 다세대주택과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보증금이 적고 매매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과 실수요자인 서민이 범행의 타깃이 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를 본 주택 유형은 다세대주택이 1,129채(66.2%)로 가장 많았고, 아파트 271채(15.9%), 오피스텔 265채(15.5%), 단독주택 40채(2.4%) 순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단속한 결과지만 계속 급증하고 있어 상황이 심각하다. 보유한 주택이 무려 2,700여 채인 인천 건축왕의 전세사기는 심지어 공인중개사, 바지 임대업자, 중개 보도, 인천 등 수도권과 대전, 부산 등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만 전세사기로 경매로 넘어간 주택이 무려 1,500여 채에 달하고 있다. 건축왕에게 당해 경매로 집에 쫓겨날 상황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3명도 바로 이곳이다. 화곡동의 빌라왕은 전세가를 매매가보다 높게 받아 차익을 챙긴 경우다. 인천 건축왕은 한술 더 떠 토지를 사서 건축한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 대출받고 전세 보증금까지 챙겨 임의경매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규모도 수백억 원에 달하고 있다. 건축왕의 소유 주택은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모두 2,700채로 대부분은 그가 직접 신축했다. 이는 빌라 1,139채를 보유했다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진 이른바 ‘빌라왕’ 보다 2배 이상 큰 규모다. 공모자들은 구속됐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세입자들의 안타까운 상황이다. 급기야 정부가 나서는 모양새다.

이들의 수법은 살펴보면 참으로 악랄하다. 깡통전세 수법으로 정확한 시세 측정이 어려운 집을 대상으로 매매가를 뻥튀긴 뒤 실제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세입자를 모집하고 세입자의 잔금 납부 이후에 주인이 바뀌게 되는 수법도 등장한다. 전세 보증금을 대상으로 한 갭투자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 건축왕 사례는 지난해부터 자금 사정 악화로 아파트나 빌라가 경매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데도 무리하게 세입자들을 상대로 안심시키며 전세 계약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담보 대출 이자와 각종 세금이 연체돼 계약 만료 시기가 도래하면 전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오히려 보증금을 수천만 원씩 올리며 계약을 유지한 경우도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10여 년 전부터 주택을 사들이기 시작해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새로 지은 뒤 전세 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가며 무려 2,700채를 보유한 것이다. 대출금에 전세금까지 챙긴 것이다. 금융기관의 근저당이 임차보증금보다 앞선 권리를 갖기 때문에 인천 건축왕 피해자는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국적으로 속출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경매 절차를 임시 유보하도록 조치하고 긴급 구제 저리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사사례를 어떻게 해결하지는 의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경매 진행 중인 주거지 구입을 희망하면 최대 2억 원의 경매 낙찰자금(경락자금)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갑자기 이런 전세사기가 속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일각에서는 전 정권의 임대차 3법과 부동산값 폭등을 그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며 강화한 임대차보호법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는 지적이다. 세입자 보호는커녕 전세사기의 바탕을 만들어 준 결과를 낳았다. 깡통전세이기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을 최우선 변제해도 피해는 불가피하다.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가를 부축인 부동산값 폭등으로 무자본 갭투자 방식의 한탕주의가 팽배했다. 이런 기형적인 부동산 상황이 현 정권 들어 부동산 폭락으로 이어지면서 대란을 불러오고 있다. 이는 일과성으로 단순히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높은 전세가로 전세를 놓은 아파트 소유자도 거꾸로 낮아진 전세금의 차액을 돌려주거나 이잣돈을 물어주는 심각한 형국이 되었다. 실제 상황이다. 한마디로 부동산 흐름이 만신창이 되면서 분양이나 매매, 전세 모두가 삐걱거리고 있다. 집을 팔아도 금융부채를 다 갚지 못한다. 이런 파국적 현상이 전국적으로 돌출하고 있다. 최악의 부동산 상황을 초래한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이 무겁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전세사기범들이 대출금과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한 채 만세를 불러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구리, 동탄 등에서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전세사기도 조직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이 문제다. 경기 구리시의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은 20여 명이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펼친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만 500여 명에 달해 피해액이 수백억 원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전세사기 수법과 같은 방식이다. 피해자는 최소 5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매매·전세 동시진행, 깡통전세 등 기존 전세 사기 범죄와 비슷한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오피스텔 전세사기 의혹'도 수사 중이다. 경찰은 250여 채를 소유한 부부와 위탁 계약을 진행한 공인중개사 등도 출국 금지했다. 인천 건축왕을 비롯하여 서울·경기·부산에서도 전세사기 범죄가 잇따르면서 정부의 피해 지원 대책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규모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경찰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점을 들어 범죄단체조직죄 적용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세사기범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세입자들이 고통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문제는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입주한 세입자들은 정부가 다시 대출해 준다 해도 또다시 빚만 가중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는 점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황당하다. 전 정권 시절 기형적인 부동산값 폭등이 가져온 후폭풍이 너무나 거세다. 세입자 말고도 아파트 소유자들도 주요 도시에서 눈물을 짓고 있다. 아파트값 폭락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서울, 부산, 세종시 등 주요 도시에서 빚어지는 또 다른 현상이다. 부동산값 폭락이 빚으로 산 아파트 소유자들의 고통과 함께 깡통전세, 미분양 대란, 경매폭증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 미국의 모기지 사태의 악몽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대중영합주의적인 부동산 정책이 가져온 비극이다. 현재의 부동산 상황은 백약이 무효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철저한 진단과 대처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전세사기 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란으로 인한 금융권의 대란도 우려된다. 벌써 새마을금고와 제2금융권의 PF부실화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거품이 걷히는 부동산에 관한 한 모든 정책이 사후약방문이 되고 있다. 냉엄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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