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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향기 뜰 앞에는 국화들이 무리지어 동지 팥죽보다 더 붉게 탄 얼굴 찬 겨울 횡포에도 미라가된 몰골로 향기 날리니 칼바람의 유혹은 끝이 없다 구월의 미모는 온 마을 꽃물 들이고 인연들은 옆구리 끼고 도는 가을바람이고 싶다 이제, 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찌들어 가는 얼굴로 향기 뿌리며 칼바람을 조롱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2.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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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明鏡) 불혹의 나이 접어들 때 즈음 어느 날 어머니가 물끄러미 바라보시드니 명경을 보라하며 아버지가 그리울 때는 물그릇에 먹물 떨어지듯 아물거리는 모습이 쉼 없는 강물이 세월을 업고 흘러가는 회천과 벗하다보니 고목이 따로 없다 거울 앞에 서서 연기자처럼 침묵이, 아버지가 오셨다 조심스럽게 이곳저곳 얼굴 만져보고 있으니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2.1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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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虛想) 해와 달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 내가 사는 별의 세상을 만들었다 별들의 신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짧은 시간 동안만 힘을 빌려주는 것이며, 가뭄의 지친 식물에 물주면서 나는 작은 별이 되었다 서녘 하늘 노을에 물든 단풍잎은 낙엽이 되고 시계의 톱니바퀴 속에 작은 톱니가 되어 세월을 잡아 놓을 줄 알았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2.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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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소식 밤하늘 꽃은 별이다 서녘 하늘 저 높은 곳의 별 아마도 엄마별 눈 오는 날 눈송이 타고 내려온 별들 속에 그별 하나가 엄마 얼굴 그리며 눈 속을 뒹굴며 별들 하고 섞여 엄마 볼에 얼굴 비빈다. 밤하늘 꽃은 별이다 서녘 하늘 저 높은 곳의 별 아마도 엄마별 바람 부는 날 바람 타고 내려온 별들 속에 그별 하나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2.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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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향기 고희가 지난 내가 소년이 되고 환갑이 지난 네가 소녀가 되고 국화 향기 자욱한 꽃밭에서 익어가는 가을에 취하여 벌과 나비들이 다투어 사랑싸움하고 있으며 내가 벌이고 네가 나비면 아니, 네가 벌이고 내가 나비면 아니다, 너와 내가 꽃밭이 되자 쑥스러운 사랑의 이야기를 국화가 되어 향기 날리고 벌과 나비처럼 마음도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1.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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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저물어가는 시월의 회천은 때 이른 눈(雪)이 강변을 하얗게 덮고 가냘픈 여인이 허리 살랑이며 유혹하니 사내는 바람이 되어 이리저리 신이 나서 쓸고 다니며 앞산의 단풍나무는 장승처럼 생각 없이 구경만 하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1.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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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은행나무가 황금 옷으로 갈아입었다 심술 많은 바람 불어 한 잎 두 잎 똑똑 발밑에는 온통 황금 잎이 가득하다 조심스럽게 만지는 부자의 미소가 즐겁다 바람은 놀부가 되어 한 잎 두 잎 똑똑 발아래 떨군다. 은행나무는 아낌없이 황금 잎을 내어준다 곧 겨울이 오는데, ▶시작노트 각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1.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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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장불입 시월 단풍을 보고 바람풍이라 예전부터 남자는 풍을 칠 줄 알아야 하고 사나이의 허세가 세월을 쫓아다녔고 삶은 낙장불입 이었다 그래도 시월 단풍은 바람풍이다 ▶시작노트 삶이 어찌 평탄한 길만 걸어갈 수 있겠는가 때론 험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경험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여로가 아니겠는가?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1.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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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높고 푸른 하늘에 취하고 산천에 반하여 노래하며 익어가는 산과 들이 침묵하지만 타들어 가는 단풍이 못내 아쉬워 노을의 서러움 참지 못하여 울고 있다 멍들어 가는 낙엽 들고 낭만을 찾던 내 가슴이 멍들어 간다 ▶시작노트 푸른 시절은 어디가고 단풍도 아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1.0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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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걸음걸음 비바람의 발자국 견디며 성숙한 모습으로 향기 뿌리는 길 옆 들국화 들판에 수놓인 꽃들 지평선 따라 모두 갔는데 외로이 혼자서 님 오실 때까지 들풀인 양 숨어 설렘도 죽이고 비로소 사랑은 가슴에 묻어두고 노을 따라 눕는다 ▶시작노트 아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0.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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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의 낭만 잦은 태풍에 숨죽이며 숨어 있든 너는 고개 들어 얼굴 내밀고 젖은 마음 둘 곳 몰라 어정거리는 가을 남자가 갑자기 날아온 노래 한 소절에 님 그리운 설렘도 한쪽 가슴에 숨기고 가을 빗속으로 낭만을 찾아 젖은 마음 씻어낸다 ▶시작노트 남자는 가을이면 그냥 설렘이 가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0.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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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나무 뒷집, 감나무집 딸 순옥이 시집가라고 하면 얼굴 빨갛게 달아올라 죽어도 시집 안 간다고 도망가더니만 추석이라 보름달 같은 아들 안고 와서 신랑 자랑하며 친정집이 부산하다 대문간 옆 단감나무는 순옥이 보다 나이가 많다 지붕 위에 주렁주렁 달려 익어가는 단감이 순옥이 수다스러운 이야기 들으며 질투 나서 자신도 곧 시집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0.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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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 때론 하루가 지루할 때도 있지만 토요일인가 하면 일요일은 덤으로 넘어가고 회천 모듬내 코스모스 밭에는 꽃잎이 파도 같지만 향기는 멀어지기만 하는 것을 불어오는 바람 앞에 고개 숙이고 돌아서면 숨 막히게 찌던 무더위는 어디 가고 소매를 내려야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10.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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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칫솔 벌초를 끝내고 소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훔치면 시원한 바람이 젊은 시절 파란 이파리를 데리고 논다 삼십대 중반 어느 가을날, 큰아버지가 서울 나들이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사는 것이 궁금해 오셨다 화장실에서 칫솔 통에 여러 칫솔 중에 어느 것이 내 칫솔인지 묻는다. 파란색이라 하니 주저 없이 내가 미처 새 칫솔 있다고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9.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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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아무리 미물(微物)의 생이지만 별로 죄책감 없이 무슨 염라대왕처럼 눈에 보이는 대로 휘두른다. 주위 빙빙 돌며 신경전으로 조롱하니 호시탐탐 기다려 사정없이 내리친다. 소나기 바위에 떨어지듯이 무슨 업장(業障)이였기에 문득 가슴이 덜컹 거린다 슬그머니 구석진 곳에 밀쳐놓았다 한 참 후 보니 어디 갔는지 없다 ▶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9.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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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에서 여름 끝자락에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힘겹게 붙어 몸부림치는 너는 숨 쉬기도 갑갑하게 권력을 남용했다 가을이 처서를 앞 세워 무더위를 사정없이 밀어내며 또 다시 권력은 가을로 이동한다 마음 간사하여 푸른 녹음도 쉽게 잊어버리고 서늘한 바람과 함께 빠르게 물들어간다 서운하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9.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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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열탕에 들어가서 뜨거운 고통을 전신이 이기면 한여름 할머니가 등물 해주시던 시원함이 있다 실 눈감고 누워 음절도 모르는 시조 중얼거리며 졸음을 즐긴다. 천장이 새롭다 세상천지가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꽉 차 있다. 밤하늘의 별처럼 마누라 하고 연분 맺은 반백년 심심하면 반지타령 하더니 고희가 되니 잊은 모양이다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8.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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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사시사철 변함없이 보름달이 뜬다 우리 집 마당 너에 고집은 땅 나의 고집은 하늘 그래도 그믐달 보다 보름달이 좋다 우리 집 마당 ▶시작노트 가로등은 변함이 없다. 언제나 땅을 밝게 한다. 화자는 가로등에게 말 한다 왜 땅만 밝게 하나 하늘은 어찌하라고 시비하지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8.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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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둘이다 동지섣달 칼바람은 회천 뚝 버드나무가지 흔드는 기세 눈바람과 한패 되어 당한 서러움, 아랫목 이불 속에 발 묻고 다짐하면서 칠팔월 한여름을 그리워했다 오늘 너는 인정머리라고는 찾을 수 없다 바람도 쫓아버리고 따가운 햇살, 그늘 찾아 우왕좌왕 하는데 호박넝쿨과 고구마줄기도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8.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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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채바람 삼베적삼 우아하게 차려입고 둥근 부채 들고 삼복더위 몸으로 막으며 이마에 포도송이 같은 땀방울이 둥근 부채질에 자맥질 한다 모듬내 다리 밑에서 바람들이 동무하여 몰려오고 매미소리 베개 삼아 늙은 아들 코 고는 소리 부채질하는 어미는 아주 오랜 예전의 지아비 모습 떠올리며 하나 둘 떨어지는 땀방울이
백성일시인의 '멈추고 싶은 시간'
김태선
2023.08.10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