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연가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바람이 휘젓는 공중은 시간을 잊은 듯 허물어지며 흠뻑 젖은 나뭇가지의 적막한 그림자 걸려 있네 불빛 속 저녁 비는 너를 향한 그리운 눈물 고된 하루의 무게가 촤르르 빗물에 풀리면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마음 비가 내린다 맹렬히 두 주먹 빗물은 이제 막 헤어져야 할 누군가의 서러움일지도 모
풀잎 꽃 같은 얼굴로 지상에 나왔으나 가랑 가랑비에 얼룩져 버렸네 나무처럼 반듯하였으나 간들바람에 붙들려 제 몸 내어주었네 담장 곁의 잔잔한 풀꽃 가장 낮은 모습으로 비를 머금었네 초롱한 몸짓으로 바람을 품으며 춤추네 ▶시작 노트 녹음이 우거진 세상. 맘껏 활보하기 좋은 날들이다. 모든 것들이 풍성하게 시
그림자를 딛는 저녁 잿빛바람 몹시 부는 날은 하루해가 짧게 여물고 흐트러진 마음 미처 여닫지 못한 채 긴 밤에 풀어놓으면 송곳처럼 일어서는 고독 무엇이 나를 흔드는가 가끔 어둠속에 서서 보이지 않는 심연의 저쪽 그렁한 눈으로 수렁 같은 터널 더듬으면 알 수없는 단단한 벽, 온통 벽들 끝내 돌아서고야 마는 그와 결별
초록의 파장 문을 나설 때면 늘 습관처럼 차 키를 낚는다 낚지 않으면 불안한 듯 허둥거리다가 머릿속 기억을 더듬다가 손에 잡히는 순간 휴(休)ㅡ 제대로 문을 나선다 오늘은 버젓이 제자리에 두고 산뜻하게 길을 나선다 오월의 골목은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 메워지고 누군가의 잡담으로 북적이는 한낮 먼 사람조차 함께 걷는다
손 편지 흘러간 시간만큼 두툼하게 먼지 쌓인 뭉치들 괜스레 바쁜 나날이 봉인한 옛 사연들이 산 그림자처럼 밀려든다 부딪히고 굽이치던 학창 시절 진한 우정과 사랑 이별과 만남이 거기. 강물처럼 뒤척이고 있다 한나절 내내 허름한 상자 속에 나를 가두는 시간 창밖엔 세찬 바람이 기억의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
노랑! 당신 우수雨水가 지나자 봄빛이 마냥 무르익는다 울타리를 넘어온 바람은 숨결조차 부드럽다 풀어진 땅을 헤집고 우뚝 솟은 복수초 겨울 안녕 고하듯 손 흔든다 별안간 시샘하듯 나타난 성근 눈발이 산수유 깊은 가슴으로 파고든다 살포시 기울어진 민들레 나비처럼 날아가 풀썩이고 싶다 길어진 햇빛은 모퉁이길 돌아가며 그림자 벗겨
날아라 나비 봄비가 가지런히 내리는 이른 아침 따뜻한 차 한 잔의 으시시한 마음이 열리네 기울인 찻잔에 스며든 나비 입술을 대면 아른거리는 날갯짓 한 모금 물 때마다 솟을까 말까 팔딱거리네 뿌연 유리창에 마주한 홍매화 이슬처럼 눈물 고이고 어쩌다 부는 바람에 온몸으로 나부끼네 싸늘한 찻잔 속 날개 접힌 한 나비
둥근 세상 금붕어 한 마리 이리저리 뒤척이다 뻐끔, 아침을 토해낸다 밤 새워 더는 못 참겠다고 빛살 가득한 물 벌컥벌컥 들이 마신다 거실 창에 붙어 앉은 투명그릇 잔잔한 수면 위로 생긋 웃는 아침 햇살 주홍빛 몸에 두르고 핑그르르 맴도는 작은 몸놀림 물 속, 작은 세상 펼친다 움직이는 고요 속에 흔들리는 내 마음 스킨답서스 잎
나이트블루밍쟈스민 수많은 날들 지나고 차가운 이 밤 달빛이 꽃잎 위에 무릎을 끓네 어느새 흠뻑 젖은 눈은 은밀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 그대에게 사로 잡혔네 도도히 흐르는 밤안개 불빛에 녹아들고 네 몸에서 물빛으로 떠오를 때면 하나 둘 꽃내음 터지고 깊디깊은 창공 탱탱한 달빛 속으로 물들어 버렸네 ▶시작 노트
천변의 봄 땅 위에서 웅크린 줄기들이 마음껏 물관을 타고 햇살을 감으며 위로 옆으로 몸을 뻗치는 날 가디건 하나 걸치고 천변 길에 들어선다 졸졸 흐르는 물살에 굳은 세포가 쭉쭉 펴지는 듯 온몸이 가볍기만 하다 홀로 견딘 백목련 한 그루 연인처럼 다가오고 흙 내음 맡으며 걷는 내게 손 내밀며 환한 얼굴로 맞아준다 물가에
그대에게 가는 비 언제였을까 마음의 길 잃어버리고 나를 찾지 못해 헤매던 날들 종일 비가 내린다 힘겨운 숱한 짐들이 풀려 어디론가 사라질 때쯤 어스름 장대비는 그대의 빈 구둣발 소리로 들려온다 하루가 시든 향기처럼 떨어진 시간 위에서 마음을 흠뻑 적셔주는 그리움 그래서일까 안개 속으로 초연히 드러나는 길 하나 그
돌아오는 길 찬바람 속 가을비가 휘날린다 머리칼 오므리며 낯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긴 숨 허공에 매달며 떠나가는 기차에 아련히 젖어드는 외로움 빗물지는 차창에 어리는 얼굴 아직도 기억의 갈피마다 그리움은 차올라 끝내 지울 수 없는 사랑의 꽃 진 자리 귀로의 내 발길 닿는 곳에 이제 어둠은 흩어지고 가로등 홀로 불
엄마의 달 나물을 볶다가 어둑해진 베란다에 서서 달을 어루만진다 잠시 아득한 달빛 속에는 벽 그늘에 기대 앉아 자정의 어둠보다 더 짙어지던 얼굴 붉게 흔들리며 스러진다 밤 깊어갈수록 왁자지껄 되살아나는 별무리 사이 말을 잃어가는 달 끝내 영원할 것 같은 당신의 가슴이 이지러진다 내 눈동자 속으로 엄마의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