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꽃뱀이 지나는 언덕에 벌 나비 그리다 한 맺힌 한생 새 하얀 눈망울 속에 서려 있는 너의 슬픔 노란 향기로 남아있어 소쩍새 밤새 울어대던 그 해 오월 꽃잎을 한잎 두잎 바람결에 날려 보내고 가시만 앙상히 남아 죽을 만큼 제 가슴 쿡쿡 찔렀겠지 옹이진 한 생애 빨간 열매 맺어놓고 피안의 세계 별이 되어 사라진
춘매 설한풍에 실눈으로 세상 내다보니 희뿌연 연무사이 입춘이 아른거리고 아린(芽鱗)도 겨울 잠 깨고 꽃향기 피워낸다 청자 빛 깊은 하늘 호수에 잠들고 마른가지 상고대 아침햇살 눈부신데 홍매화 쏟아낸 초경(初經) 산수(傘壽) 가슴 불탄다
춘 설 춘분인 오늘 아침 창밖에 눈이 내린다 바쁘게 뛰어가는 아이 금방 가야 할 것 뭐 하러 내려 왔어 귓가에 맴도는 엄마의 목소리 엄마 보러 왔지 배시시 대답하고 눈시울을 붉힌다 햇살이 얼굴 내밀자 사르르 사라지는 너를 본다 천국에 계신 울 엄마에게 전화 한 통화 드려 볼까 철없이
봄이 오는가 겨우내 봄이 논두렁 밭두렁 너머에서 선하품을 하고 아직도 잔설은 시린데 여울목 쫄쫄 봄을 재촉 한다 버들강아지도 뽀얀 솜털 단장하고 버들치 피라미도 봄기운에 지느러미 활개 친다 겨울잠 깬 어미 소도 하품을 거두고 봄의 냄새를 흠뻑 마신다 농부는 헐렁한 바지가랭이 접어 올리고 지게 줄을
봄이 오는 소리 고드름 녹는 소리 매화꽃 벙그는 소리 계절의 순환 따라 발끝에 채이는 봄 벌 나비 날개 흔들면 개나리 활짝 핀다 실바람 간지러워 버들강아지 함박웃음 여울물은 쫄쫄쫄 계곡을 잠 깨우고 산 꿩이 우는 마을에 저녁연기 모락모락
봄의 찬가 긴 겨울잠 깬 봄바람이 나뭇가지를 보듬으면 나무는 춤을 추며 봄을 노래 한다 양지바른 개나리 울엔 뿅뿅 샛노란 병아리 떼 합창 속에 초록은 짙어가고 있다 토담 밑 고양이는 새끼를 품고 오수를 즐기고 새끼 찾는 어미 소의 간절함이 산울림으로 퍼져나가 참새 떼 높이 올라 군무를 이룬다 새참 이고 가
봄바람 치맛자락 훌쩍 날려 곁눈질도 민망하다 기척 없이 스며들어 적삼이 떠들린다 바람아 훔치지 마라 외로운 청상의 맘 빈 가슴 채워주고 언 마음 녹이더니 꽃망울 뒤 흔드는 엉큼한 수작였나 한밤에 꽃피워 놓고 달아나는 봄바람
동백 꽃 동백나무 가지에 걸린 해가 노을 지며 가루를 날리는 마량리 언덕 붉은 융단 깔아놓고 나를 오라 손짓 한다 붉게 피어 절정의 순간에 모가지 비틀며 꽃을 떨 군다 진홍빛 죽음들 우수수 떨어져 가득가득 널브러져 쌓이는 주검을 밟는다 가련한 여인의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너를 보니 비장하고 처연한 생각이
대지의 욕망 농부는 땀 흘리며 거친 땅을 갈아엎고 뽀얀 속살 고르고 대지에 씨알 뿌린다 그녀의 은밀한 곳에는 생명이 잉태 한다 초록이 흐르는 들판엔 꽃 잔치 한창이다 대지를 파고들던 욕망의 진자리에 튼실한 우리의 열매는 두고두고 익어간다 젊음에 가려 보이지 않던 노년의 그늘 저녁노을 짙어 와도 열정 속에 묻어두고 살수록
능소화(凌霄花) 청아(淸雅)하게 태어나 귀한 임 사랑받다 소박맞은 외로운 꽃 아득히 먼 곳 이어도 맨발로 뛰어 임에게 갈 수 있다면 --- 깊은 주름과 검버섯으로 심난한 자화상 속 아무리 과거가 되어도 붉은 마음 그대로 인걸 궁궐담장 타고 높이 높이 올라가 임 향해 꽃향기 내 품으면 혹시라도
노랑머리 소녀 노랑머리 그 녀(女)가 오고 있다 인고의 긴 겨울밤을 지새우며 오늘을 기다렸다 꽃술의 향기를 품고 남쪽에서 제일 먼저 달려왔다 햇살이 포근한 삼월이면 눈 녹인 산기슭에 둥지 틀고 샛노란 저고리 옷고름 풀고 속살을 뽐내는 그 살가운 몸매 벌 몇 마리가 밀애(密愛)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심술궂은 꽃샘추
나목(裸木) 향로봉 허리춤 물 곱던 치맛자락을 추운 나그네 벗어주고 앙상한 가지 찬바람 스치면 나무는 위이잉--- 위이잉--- 울음 토해낸다 이승의 끈 놓지 못한 마른 잎 서걱서걱 마지막 작별인사 서럽다 긴 겨울 심술궂은 찬바람 한바탕 숨바꼭질 하고나면 알몸 퍼렇게 멍들고 인
갯마을의 추억 6.25 사변 초등학교 4학년 여름 어머니 치맛자락 잡고 갯마을 외갓집으로 피난 갔다 애정 어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친절히 맞아준 외사촌 형 또래 누이들 가난한 사람들 비켜선 끝없는 먹이사슬 속 바다는 생명의 젖줄이었다 물때를 벗어나 갯벌 들어가면 조개와 굴을 따고 갯가재
간이역시발점과 종점이 따로 없는매일매일 일직선상을 움직이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도일탈을 꿈꾸며 이정표에 없는 간이역에서 내릴 때도 있다잠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나그네문득 시선에 들어온 종족 보존의 본능을 본다호박잎 몇 줄기에 들깻잎, 고구마줄기로 노점을 벌여놓고꼬기 꼬기 천 원짜리 몇 장을 채우고 있는 허리 굽은 노파그의 가슴에는 아직도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핏줄을 이을 손주의 선물을 챙기며돌아서는 지친 하루의 뒷등에황금빛 노을이 한가득 꿈을 채워주고 있어 행복할거다고개를 흔들고콧노래 흥얼거린다해야 기다려나도 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