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봄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절기 '입춘'이 지났다. 아직은 춥지만 봄이 가까이 왔다. 2023년 계묘년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춘을 넘어섰다. 옛적부터 어르신들은 대문 오른쪽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왼쪽에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을 큼지막하게 써서 붙였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은 ‘입춘을 맞이하여 크게 길하게 한다.’라는 뜻으로 집안과 나라의 길함을 함께 바랐다. 건양다경(建陽多慶)은 입춘을 맞이하여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좋은 일,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마디로 평안과 축복, 행복의 긍정적 기운이 넘치는 새봄맞이 언어다. 춥고 삭막한 겨울보다는 약동하는 따뜻한 봄의 도래를 갈망하는 마음이 입춘에 담겨 있는 것 같다. 봄을 노래하는 덕담치고는 이만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싶다. 조상님들의 지혜와 아름다운 긍정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제주와 부산, 대구 등 전국 곳곳에서 입춘의 봄꽃 소식도 전해진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게 한다. 강추위도 누그러지며 봄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봄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사실 쉽지만은 않다. 3월이 와도 때론 봄답지 않은 강추위로 옷깃을 다시 여미는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까 나온 말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뜻으로, 어떤 처지나 상황이 때에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빗대서 사용하기도 한다. 서울의 봄이 있었다. 수많은 민주화운동이 벌어졌던 1979년 10월 26일 ~ 1980년 5월 17일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서 연유된다. 서울의 봄은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아픈 상처를 남긴 채 무력 진압되면서 종결됐다. 민주화의 희망이 무참하게 짓밟히던 순간까지 잠시나마 누린 기쁨이었다. 춘래불사춘의 순간으로 그것이 바로 서울의 봄이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은 같은 해 6월 29일 6·29 민주화 선언을 불러왔고 직선제 개헌과 국민의 기본권을 되찾아온 역사적인 국민저항운동으로 기록된다. 민주화의 봄은 왔지만, 작금의 정치권들의 행태를 보면 정치의 봄은 아직도 춘래불사춘이다. 대립과 갈등, 반목, 패거리 정치가 민주라는 용어를 무색하게 한다. 아직도 대한민국 정치는 봄 같은 봄이 오지 않았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불법과 편법, 술수가 가득한 정치판에서 국민이란 이름은 포장용에 지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지금 국민은 고통스러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춥다. 가스비, 전기료 폭등은 난방비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고 그동안 얼마나 표리부동한 엉터리 정책을 펼쳐왔는지 황당하다. 위정자들이 국민 타령을 하면서 뒤에서는 교묘하게 국민을 속이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모순정책을 펼쳐 온 것이다. 정치를 잘못해서 빚어지는 결과가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악질적 사례다. 위정자들이 져야 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누구의 잘못인지도 그 소재조차 제대로 가리지도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지나고 있다. 그 사이 서민들은 등골이 휠 정도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이번 난방비 폭탄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야말로 노상강도를 만난 격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난방비를 긴급 지원한다며 10만 원, 20만 원, 30만 원을 책정해 시혜를 베풀 듯이 취약계층에 지원한다고 부랴부랴 나서고 있지만, 이것도 문제가 많다. 툭하면 취약계층을 말하지만 힘들게 사는 서민들이 너무나 많다. 취약계층 못지않은 서민들은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탁상행정으로 난방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세입자들이나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겨울은 혹독하다. 마치 복지 사각지대를 보는 듯하다. 이 겨울이 빨리 지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은 찬바람만 가득하다. 아파트값은 반 토막 났지만, 설상가상으로 금리가 폭등하여 이자 부담까지 가중되고 있다. 돈 빌려 아파트를 산 사람들은 난리다. 전세금을 빼주어야 하는 사람들도 그동안 아파트값이 폭락하여 부동산중개업소에 더 싸게 내놓아야 한다. 세입자들은 전세금에 조금만 돈을 보태면 집을 살 수 있다며 이른바 전세 연장을 하지 않고 있다. 전셋값을 크게 낮추어 내놓아도 잘 나가지 않고 있어 집주인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집값 올랐다고 전세금을 높이 받았던 집주인들은 낭패를 당하고 있다. 봄이 되면 대란이 일어날 우려가 매우 크다. 여기에다 미분양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청약 저축의 우선순위가 무색하다. 아예 선착순 동호수 배분형식으로 돌아섰다. 재개발과 재건축 현장이 많아 앞으로 더욱 심각한 양상이 예상된다. 계약 포기도 늘고 있다. 분양사들은 돈까지 주면서 미분양 사태 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높은 금리에 아파트값 폭락이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치솟았던 아파트값이 지금의 상황을 그만큼 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국의 부동산 시장은 봄이 아니라 다시 겨울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경매물건도 쏟아지고 있는 것은 보면 간단치 않은 상황이다. 이를 내버려 두다가는 사후약방문이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월은 28일이라 금방 지나간다. 다음 달 3월21일이 춘분이다. 아무리 겨울이 혹독하더라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올겨울이 유난히 추운 이유는 난방비도 급등하고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고 서민 생활이 팍팍한 탓이다. 이런데도 정치지도자들은 세력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부정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렴 정치가 실종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대한민국 정치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비정상적인 언행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정치혐오감과 싫증 남을 더하고 있다. 수준 이하가 너무나 많다. 공천 시기에는 철저한 검증을 내세우며 마치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을 공천하는 것처럼 요란을 떤다. 하지만 결과는 ’아니올시다‘가 판을 친다. 그래서 물갈이론이 나오고 국회의원 수를 100석으로 줄이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의 특권은 이제 모두 내려놓아야 할 때다. 주인인 국민이 어려울 때는 일꾼인 위정자들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주인은 굶는데 하인이 배불리 먹고 배 뚜드리며 매화타령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봄이 상징하는 것은 참으로 많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생명이 다시 소생하고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역동적인 봄은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의 의미가 넘친다. 입춘대길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 안타깝게도 부패정치인에게는 춘래불사춘이 될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사는 삶이 되어야 한다. 명심보감에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라고 했다. 순리(順理)는 자연의 질서(秩序) 다. 순리를 거스르는 자들은 정치 권력을 쥐고 있던 부를 누리를 자가 됐던 밤잠을 설치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선(僞善)의 대가는 크다. 이 땅에 다시 찾은 봄을 생각하면 자연의 순리와 질서를 깨닫기에 충분하다. 이제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평안을 찾기 위해서는 순천자의 길을 향해야 한다. 새봄에는 모든 것이 순리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올바로 나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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