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복 정치행정부장

대전 동구 국제화센터 운영을 둘러싼 책임공방이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치닫고 있다. 동구가 지난 4월 건축비를 비롯, 7년 동안 110억 여원이나 투자된 국제화센터에 대해 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동구의회와 지역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동구가 수 백억원의 혈세로 운영해온 국제화센터가 문을 닫게 된 큰 이유는 바로 재정난이다. 그동안 국제화센터를 위탁 관리해온 웅진씽크빅이 운영을 포기한 뒤 그동안 3차에 걸친 민간위탁 전국 공모에 나섰지만 결국 신청자가 없어 지속추진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후 대전 동구의회가 국제화센터 운영 중단 철회를 촉구하며 한현택 동구청장을‘직무유기 및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소까지 이르는 상황까지 치달았었다.

2008년 6월 2일 개관한 국제화센터가 처음부터 애물단지였던 것은 아니다. 당시 대부분의 지역 언론에서는 국제화센터 개관으로 동서교육격차 해소와 교육복지를 구현할 수 있게 됐다며 많은 찬사를 보냈다.

특히 어려서부터 원어민에게 직접 생활영어를 배울 수 있는 중부권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영어학습기관인 국제화센터가 원도심지역에 설립됐다는데 큰 의미를 두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화센터 운영을 두고 장밋빛 청사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동구가 국제화센터를 추진하기 이전부터 수요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전시와 대전시교육청도 포기한 사업 이었다. 이런 사업에 재정도 넉넉하지 못한 당시 이장우 전 동구청장이 무모하게 사업을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줄곧 제기됐었다.

국제화센터가 바로 전시행정의 표본이 아니겠냐는 얘기가 지역민들 사이에 지금까지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화센터 문제를 단순히 전 동구청장의 전시성 사업으로 치부한다는 것도 무리다.

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전임 지자체장들이 수 백억원을 들여 벌인 사업을 모두 포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중한 주민들의 혈세가 투입된 만큼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어떻해든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적자를 해소하는데 힘을 쓰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현택 구청장이 민선5~6기동안 국제화센터가 주민들의 여론과 구 재정을 모른채 이 전(前) 구청장의 독선적인 전시행정으로 몰고 갔다는 점이다.

이 전(前) 구청장이 국제화센터 건립이 당시 주민들과의 공약사업이기 때문에 추진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지자체마다 영어캠프 바람이 불 때 유치한 시설로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사업임에는 분명하다는 점도 잊어선 안된다.

특히 지난해 6·4지방선거 당시 공천권을 둘러싸고 이 전 구청장과 갈등을 빚은 한 구청장이 이 전(前) 구청장의 치적으로 대표되는 국제화센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 도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구 재정난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사태까지 봉착한 상황에서 한 구청장이 국제화센터 정상 추진을 위해 건실한 민간업체를 찾는데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 이유가 단순히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되자 지역주민들과 동구의회가 국제화센터 정상화를 위해 발로 뛰기 시작했다. 동구 주민 350명은 5월 13일 서울 웅진홀딩스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초기 투자비용 35억원을 환원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김현경 동구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장은 “교육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동구주민을 농학하고 있는 웅진씽크빅과 윤석금 회장의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 줄 것”을 주장했다.

이어 동구의회도 더 이상 국제화센터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지난 19일 유택호 의장을 비롯한 8명의 의원들이 대전시청을 방문해 권선택 대전시장과 면담을 갖고 “동구의 어려운 재정형편으로 운영이 중단된 국제화센터를 시에서 매입해 운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동구청이 포기한 국제화센터 운영을 주민들 스스로 또한 주민들의 대표기관인 구 의회가 전면에 나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 찬사를 보낸다.

동구청 역시 재정난을 핑계로 국제화센터 운영을‘강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동구의 주인은 주민들이며 이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야 하는 것도 공무원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한현택 구청장은 오랜 공직 경험을 지닌‘행정의 달인’으로 불리운다. 특히 대전시 공보관으로서의 뛰어난 공보감각도 지닌 것으로 알고 있다. 국제화센터 향후 운영에 대해 주민들의 여론을 진지하게 살피고 이를 행정에 적극 반영해야 하는 책무로 주민들의 손으로 선출된 구청장의 임무일 것이다.

한 구청장은 국제화센터를 전임 구청장과의 정치적 힘겨루기의 전유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국제화센터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됐고, 문제점은 무엇이고, 향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후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동구 국제화센터는 전임 구청장의 전유물이 아니다. 분명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 공공시설이다. 향후 국제화센터가 어떠한 운명에 처할지는 분명 한현택 구청장의 의지에 달려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