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작가의 술의 나라-3

▲ 김우영 작가
“먼저 붉은 포도주 한 병을 준비한다. 다음에 유리컵에 보드카 한 잔을 따라서 거기에 포도주를 한 두 방울 정도 떨어뜨려 이를 단숨에 들이킨다. 한 병을 완전히 비울 때 까지 계속하면 방사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허나 당신을 주독에서 구할 방법은 없다?”

이 말은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선을 쬐었을 때 술을 마시면 치유가 된다는 어떤 의사의 처방전 이었다.

수 년 전 원자력 발전소가 생기면서 핵폐기물 처리 문제로 이곳저곳에서 떠들썩하였다. 정부는 적합한 지역을 선정하여 처리 장소를 설치하려 하고, 그 지역 주민들은 집단 항의로 맞대결을 하곤 했다. 아마 이는 1945년 이웃 일본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의 어마어마한 위력의 공포가 지금껏 앓고 있는 일부 원폭 피해자들의 무서운 질병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최근 원자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술이 방사선에 관련된 질병을 퇴치시킬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언제 어디에서 나온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원자력 발전소 부근에서는 종종 나온다.

우리나라의 캐나다 형 원자력 발전소(캔두형 발전소)에서는 다른 원자력 발전소 보다도 방출된 방사선 중에 삼중수소가 조금 더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캔두형 발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주위에서는 발전 근무를 하고 난 다음에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면 방사능이 깨끗이 없어진다는 말이 돌아 한 때 술을 많이 먹었었다. 더불어 우리나라 막걸리도 방사선과 관련, 질병치유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일이 끝난 후 많이 마셨다.

그러나 사실 원자력 발전소에 근무하는 전문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방사선 피해 증세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발전소의 구조가 허술하지 않다는 것이다. 1백만분의 1이라도 오차가 없을 만 큼 완벽한 과학적 구조장치가 되어 있어서, 발전소 근무자나 인근 주민들은 하등의 피해의식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다만 방사선과 술을 관련시킨 말은 아마도 심리적인 이유인 듯 싶다. 구소련의 체르노빌의 사고 이후에 국내에서도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에 대한 불안감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때 몇몇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에 대한 불안감 해소의 일환으로 술을 마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방사선이란 에너지를 갖고 있는 보이지 않은 광선이다. 흙이나 콘크리트 건물, 쌀, 야채, 우유 등 음식물에도 나오는데 이는 자연 방사선이다. 인간이 1년 동안 체내 외를 통하여 받는 방사선량은 2백40 미리그람 정도이다. 우리는 옛날부터 방사선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술과 방사선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다만 몸속에 삼중수소가 약간 들어갔을 때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면 이뇨작용 등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몸속의 삼중수소 배설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억지 논리로 비약시킬 수는 있다. 포도주는 대체로 알칼리성 음료로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도 좋다. 항균성도 지니며, 소아마비 포진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퇴치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 낭설에 호도되어 주당이 많아져야 할 이유는 없다. 유난히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마시기 좋아하는 저 하얀 설원의 구소련 차로세츠다로비예 건배의 미학일 것이니….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