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작가의 술의 나라-2

▲ 김우영 작가
‘有酒有藥, 無酒無藥’

술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술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뜻의 이 말은 문학청년 시절 내가 자주 가던 종로 청진동의 명물 ‘시인통신’의 벽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낙서 중의 한 마디이다.

지금은 이미 없어졌지만 예전에 잘 다니던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뒷골목으로 10여 미터 들어가노라면 막걸리집인 열차집이 있었다.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허름한 문간방이 나타난다. 두 어 평 됨직한 이곳이 8년여 동안 이어져온 카페 시인통신이다.

본래 B시인이 운영하던 것을 중년의 H 소설가가 인수하였다. 많은 시인 묵객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맥주를 내놓는 자칭 타칭 민족주의자들의 사랑방이었다.

돈 없고, 백 없는 가난한 문인들이 몰려와 한 잔 술에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밑동이 썩어들어 갈 듯한 허름한 한옥 집이 떠나갈 정도로 뜨거운 이념논쟁에 주먹다짐까지 해대며 떠들어대기도 한다. 주위에서는 이상한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랑대는 묘한 집으로 오인되었나보다. 한 때는 당국의 시찰업소 리스트에 올라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술을 마시다가 취하면 탁자 위에서 그냥 머리를 박고 잠을 자기도 한다. 흥에 겨우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른다. 돈 없으면 외상도 마음대로 한다. 그처럼 편할 데가 어디 있겠는가. 집에 갈 버스표도 하나쯤 손에 쥐어주는, 이들의 누님이자 연인인 H씨가 가장 난처할 때가 있다. 어디서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와서는 혼자 자는 방에 들어가 잔다고 우길 때라고 한다.

테이블 4개의 비좁은 공간이건만 천장과 사방 벽은 온통 낙서판이다. 마치 대학가의 학사주점이나 선술집을 연상케 한다. 휘갈겨 쓴 낙서를 대충 훑어보면 이렇다.

“죽으면 죽었지 지금 죽을 수는 없다.”
“소주는 짧고 맥주는 길다.”
“사람 중에 깨어있는 것은 입 밖에 없다.”
“오늘도 하늘을 내려와 내 술잔에서 풀어지는 여인이여!”
“허무, 그 단단한 놈!
“대머리 한씨의 계보를 찾아서 ….”
“물은 개나 마시고 술은 인간이 마신다.”

단골 손님중 시인 한 사람이 쓴 낙서를 보면 또 이렇다.

“오늘따라 누님이 너무 아름다워서 개수작 했습니다. 누님은 여전히 누님이고 강물은 저렇게 흘러갑니다!”

텁텁한 막걸리 몇 잔에 요의를 느끼고 좁은 화장실에 들어서니 그 곳에 살아 꿈틀대는 낙서 한 줄이 눈에 화악-- 들어온다.

“잘 사는 놈이 법을 지킬 때 못 사는 놈은 기분이 좋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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