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는 우리의 韓字다. - 셋>


(전회에서 언급하였지만) 한글은 단군조선 3세 단군 가륵嘉勒 치하에 만들어진 <가림토문자>에서 연원 하여 이를 改製한 것이라 해석되는바, 세종대왕이 창제(創製;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한 것은 아니고 좀 더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정(改定; 정해져 있던 것을 고쳐 다시 정함)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에 유럽 등에서 사용하는 문자는 그 원류를 이집트문자에 두고 있고, 영어가 세계어가 된 것은 제국주의 시절 식민역사와 떼려야 뗄 수가 없으나, 이와는 관계없이 한자는 아시아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이다.
이 한자문화권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한자의 원시문자는 甲骨文字로서, 19세기 말 이래 발굴되고 있는 殷代 지역에서 甲骨文字가 다수 발견됨으로써 한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황하문명 그 이전의 우리 고대의 홍산문명이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마고여신상은 흑피옥 시대(흑요문명유적)의 것이고, 그 이전에 크리스탈 분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서(桓壇古記)에 의할 때, 천산산맥에 이르기까지 만주 등이 그 시기에, 그 영역이 우리 고조선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이 삼환관경지명도三桓官境地名圖, 환국시대지경도桓國時代地境圖, 환웅시대지경도桓雄時代地境圖, 청구시대지경도靑邱時代地境圖, 삼한관경도三韓官境圖, 조선시대지경도朝鮮時代地境圖나 고구려高句麗 전성기 최대 판도, 백제百濟 전성기 세력 판도 등 여러 고지도古地圖에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殷나라나 商나라가 존재하던 시대에는 이 나라의 영토 모두가 옛 우리나라, 즉 三桓시대인 桓國, 桓雄朝鮮이나 靑邱時代, 三韓時代에 우리나라 疆域이었음을 알 수 있어 우리의 선조가 지배하던 곳이다.
이는 明나라를 세운 朱元璋이 고려 해남 사람이었고, 그의 묘가 중국사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나라 해남에 있다는 것이 그 지역 유현전설인 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어도 명왕조가 高麗人이 주축이었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朝鮮을 도운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며, 이는 百濟가 멸망한 뒤 日本의 제명일왕, 즉 사이메이日王이 백제부흥운동을 벌리고 있던 복신장군을 도와 군대를 파견하여 백촌강전투에서 패한 역사적 사실과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자는 고대에 우리의 선조가 창제한 우리나라의 글자가 확실할 뿐만 아니라 “漢字”라는 명칭도 중국의 역대왕조 “漢”나라 시대에 그들이 국어로 사용하면서 자의적으로 이름 짓거나 표기한 것이다. 웃지 못 할 일화로,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安浩相; 1902.1.23.~1999.2.21.)의 사대주의적 사고가 우리의 심각한 현실을 일깨운다. 즉 그가 중국의 세계적 대문호 임어당(林語堂; 1895.10.10.~1976.3.26. 소설가·문명비평가)을 접견했을 때 (안 장관이)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놔서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 하니까 임어당이 깜짝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장관이) 그것도 모른단 말이오?”하고 핀잔을 들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아직도 한자는 중국(인)의 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무지의 소산 내지는 사대주의 사상은 아닌지? (‘넷’으로 이어집니다.) (법학박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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