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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누가 걸쳐 놓았을까 가지 끝에 뚝뚝 흐르는 봄 나비 떼처럼 날아오르는 살 냄새 취한 듯 비틀거리는 바람 은근슬쩍 한 쪽 팔 밀어 넣자 이리저리 몸 비트는 꽃잎들 어쩔거나 너 마저도 어긋난 사랑인 것을 서러운 봄날 잔기침 소리에도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들 앓는 소리 요란하다 ▶시작 노트 얼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4.02.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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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얼마만큼 더 가야할지 풀어 놓은 목청 이 산 저 산 헤매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희미해지는 소리 급소를 건드릴 때마다 잊었던 기억 되살아나 채찍으로 엉덩짝 맞던 그날처럼 목이 터져라 질러대는 비명소리 두려움은 날개를 달고 이 언덕 저 언덕 기어오르다 추락하다 몸으로 풀어내는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2.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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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에 올라 가벼웠던 목숨들 머물다 간 자리 간밤 긴 사연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흰 눈 풀어지고 지웠던 풍경들 살아나고 갇혔던 마음 슬슬 풀어지는 날 미처 풀지 못한 생각들이 한계령으로 올라온다 한계라는 끝을 찾아 담판이라도 짓자는 것인가 까마귀가 허공을 찢으며 침묵을 깨는 미시령 옛길을 지나 한계령에 오면 여기가 끝인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2.1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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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 아찔한 순간, 매달린 채 한 자씩 늘리는 키 고추보다 매서운 날들 물구나무 선 채 나를 단련시켜 보란 듯 어떤 힘에 붙잡혀 거꾸로 매달려 내려다 본 골목 내려가기도 올라오기도 힘든 길 멈춰 선 저 돌들이 슬프고 훌렁 벗어던진 나무의 알몸들이 슬프고 똑똑 떨어지는 눈물방울처럼 작아지는 내 몸이 슬프고 나를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2.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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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처럼 포갤 수 없으면 스며버리자 스며버릴 수 없으면 그냥 녹아버리자 처음부터 없었던 눈 쌓인 길을 걸으며 있고 없고 에 대하여 다른 두개가 완벽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중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본질을 누구는 내린다고 했다 나는 덮는다고 쓴다 지워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무채색으로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2.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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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 대문 앞 쓸다가 모로 누워있는 소주병 하나 주웠다 쓰레기 더미에 몸 숨긴 채 억지 잠이라도 청한 것일까 제 몸 가둘 곳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그는 분명 쓰레기 봉지 이탈했거나 제 속 훔쳐간 누군가에 의해 버림받은 것이다 한번쯤, 어느 심장에 강하게 박혔을 그러다 헐렁해진 마음에서 뽑혔을 생각은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1.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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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묶인 배와 묶이지 않은 배가 서로 열심히 바라본다 마음의 팔은 분명 저 만큼 뻗어 몸을 묶고 싶지만 무정타 생각 바뀐 포구여 박탈당한 자유와 완전한 자유가 공존하는 그 사이에 개펄이다 미처 물과 묶지 못한 불찰이다 습관은 정신을 묶었다 목 사슬 묶인 채,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안일한 행동을 묶었다 고삐 묶인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1.2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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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 쓸쓸한 존재 앞에서 다 비워지더라 빈틈없이 채웠던 욕망의 잔재들 정해진 시간 앞에 내 것은 하나도 없더라 내려앉은 하늘과 먼 수평선, 흐느적거리는 안개 개펄 위 모래알갱이 속에 작은 흔적 하나 꿈틀대더라 철철 넘치도록 채웠던 땀방울 썰물이 비워내듯 억새풀잎처럼 말라가는 것을 달라질 것 없는 우리들의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1.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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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고개를 숙일 때 이제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는 경건의 시간 정해진 운명 앞에 단정하게 엎드립니다 발꿈치 세웠던 날 선 시간들은 우리 젊은 날의 패기와 집념이었습니다 허리를 구부리는 것이 꼿꼿이 목을 조았던 힘을 느슨하게 풀어 버리는 것이 낮아지거니 결코 작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삼 발끝이 보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1.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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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0.3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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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배우다 몸 가벼워지는 시간 나무가 운다 큰소리 내며 운다 몸통 칭칭 감는 바람 드센 날 엎드렸다 일어서는 나무 보이지 않는 눈물 때를 알고 움직이는 나무의 법칙 눈앞에서 가르친다 굽히는 법과 휘어지는 법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어서는 법과 궁굴렸다 느슨하게 펼치는 법 가지와 가지끼리 비비는 법과 바람의 길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0.2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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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마시다 만 술잔 잊힐 만하면 그 입술 지울 만하면 너는 내 눈 높이까지 하늘의 사닥다리 타고 내려와 못 다 비운 술잔 찰랑거린다 그 때, 가득 찬 술잔만 있었지 넘실넘실 차오르던 이야기만 담겼지 어두움은 배경일 뿐 술 반, 어둠 반 무시로 불던 바람에 기우뚱거렸다 다시 일어설 때 와락 쏟아질까 가슴 조리던 때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0.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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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마음 밖 몸 빠져나온 생각이지 잠자리 들기 전 쓰는 그림일기 먼 벌판 서성이며 머뭇머뭇 모든 것 비우는 시간 잠시, 하늘은 무릉도원 복사꽃 만발하지 내 사랑, 몇 발자국 더 비껴갈 때 몸 바꾸는 노루 한 마리 ▶시작 노트 누구나 서산의 지는 노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0.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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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는 길 말 없어 걷는 이 길도 노을 앞에 설 때면 그리운 이름 하나 가슴에 남겠지 지는 해는 냉정하게 공산을 돌아서고 어둠은 한티재에 걸렸다 왔던 길 돌아가라 재촉하는 바람아 꼭 잡은 손 놓고 싶지 않구나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곱게 물든 단풍나무 팔공산 단풍 길은 추억에 젖는 길 누구나 한 번쯤 그리움이 되어 사랑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10.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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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에서 속절없이 파고드는 바람소리에 문득, 꽃인가 하니 이미 꽃이 아닌 세월속의 바람꽃이다 언제 꽃이었던가 휘청거리며 기를 쓰고 일어날 때가 언제였던가 머리칼 위로 지나가는 햇빛과 바람의 길 그 길 따라 연민의 눈길 보낸 적 있었다 절정의 순간도 아는 듯 모르는 듯 한세상 그렇게 잊고 살았다 가을빛 아스라이 멀어지는 허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09.1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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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에서’ 해질녘 슬프게 우는 것이 너 뿐일까 움켜 쥔 손을 푸는 너의 몸짓을 노래라고 하자 바람처럼 날고 싶어 날개를 펴는 갈대를 본다 맨 몸으로 바람 앞에 쓰러진다 기울어진다 이것이 마지막 너의 몸짓이라면 가을은 나에게 사랑을 배우라고 한다 혼돈의 시간 세상이라는 늪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웅크린 날개 앞에서 바람도 한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09.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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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리꽃 구월과 시월 그 어느 날 향수에 젖어 다시 찾는 이름입니다 사랑과 이별 사이에 있습니다 바람이 무거워지는 시간 곡선의 선율이 아름답습니다 무반주로 오는 가을의 시간은 괜히 가슴이 짠합니다 기다림 끝에 목이 휘어집니다 2시에서 3시 사이 지상으로 뛰어내린 별들을 만납니다 나도 별이됩니다 어젯밤, 몽골 밤하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09.0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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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에서 그리움의 빛깔이다 애월의 바다는 풀냄새가 난다 누군가 쉴 새 없이 밀어 보내는 녹색의 잠언들 누가 난해하다 했던 가물가에 앉아 푹 젖어 살자 달의 입장이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물에 빠진 달이 되거나 물가에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긁어 본 사람은 안다 내가 먼저 푹 빠져 심장 깊숙이 한 문장 새기다 보면 덩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08.3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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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에 올라 산은 온 종일 바다를 꿈꾼다 시간이 응축된 산 위에서 기억을 지우고 흔적을 지우고 가슴에 응어리마저 지운 여리고 선한 풍경들 여기에 그늘은 없다 흔들지 마라 깨우지 마라 느리게 몸 바꾸는 물살에 실려 마음 바꾸고 살까 가슴은 넓고 생각은 깊어 하늘을 품고 물 위에 오롯이 앉은 내가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08.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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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에서’ 섬에서 섬을 본다 꿈꾸듯 잠에 취한 성산 일출봉 물미역처럼 살랑거리는 파도소리 비취색 바다에 자맥질하면 마음 젖은 한 마리 물새다 퇴색해 가는 시간의 색(色) 헝클어진 생각들 바람에 끌려 우도봉에 서면 노을 젖던 수평선은 어느 쪽 이던가 큰 섬의 속살 같은 작은 섬 물색 짙은 여기 세 들어 산다면 어쩌다
고안나시인의 '詩 냇물'
김태선
2023.08.15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