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낯


3월의 한낮을 밟아오는 물소리가 짙다
발가락 하나 없이 온종일 걸어도 시큰둥하지 않는 물소리
지나올 때마다 그림이 바뀌고
몸과 마음이 다 잠겨도
언제나 한결같은 소리를 품기 위해 걷는다

산길이 좁아 급히 떨어질 때도
목소리를 높여 냉냉한 산새를 깨우고
한여름의 하늘이 장난삼아 불볕을 쏟아부으면
슬그머니 산 밑을 돌아 그림자로 덮는다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도 어긋나지 않아
나지막이 고개를 숙이는 물낯

어느 때는 울컥 눈물을 참느라 거칠게 소리치다가도
금새 굴곡이 없는 낮은 목소리로
캄캄한 세상을 붙드는 유유한 손 같은 물낯

얼마나 더 걸어야
저리도 맑게 깨어 울 수 있을까
어둠이 지워지지 않는 길에서



▶ 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의 근원이다. 그렇지만 공기처럼 물의 소중함은 때때로 잊혀진다. 또는 경시나 하시 등의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물 같은 성격, 물수능, 물렙곡, 물주먹, 물박사’ 등에서 그런 경향이 읽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물은 어디서나 아무 거리낌 없이 먹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지만 건강을 염려하면서 더 크게 부각된 듯하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워터 카페와 워터 바, 심지어 워터 소믈리에, 워터 칵테일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물의 가치가 존중되면서 ‘돈을 물 쓰듯 한다’는 속담은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그러니 “고기는 물의 고마움을 모른다”는 속담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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