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선거관리위원회 지도담당관 박아람

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앞에는 기다란 장대를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어짐 없이 들고 서 있는 중성의 조형물이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으로서 그 동안 많은 공직선거를 치러왔지만 4. 10. 치러지는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새삼스럽게 중앙선관위 청사 앞에 굳건히 서 있는 조형물의 명징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 바로 ‘공정(公正)’이다.

1994년 통합 선거법 제정 당시 현 「공직선거법」의 법명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었다. 통합 선거법이 깨끗하고 돈 안드는 선거를 구현하기 위하여 선거에 있어서 부정 및 부패의 소지를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국민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표현과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여 민주정치의 실현을 도모하려는 이유에서 제정되었다고는 하나 당시의 법명과 규제 일변의 조문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에는 ‘선거운동의 자유’보다는 ‘공정’이 강조되어 왔다.

부정선거와 과열된 선거운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할 사회경제적 손실과 부작용을 방지하고 실질적인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선거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 선거법 제정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계속하여 발전해왔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에서 발표한 세계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2023년 평가 총점 10점 만점에 8.09점을 기록해 4년째 ‘완전한 민주주의’ 범주에 포함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인 미국 조차도 8년 연속 그 보다 아랫단계인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으니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만하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진 만큼 선거법도 이전보다 선거운동의 자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있다. 2020년에는 예비후보자 선거운동 장소 제한, 말(言)·전화 및 명함교부를 통한 선거운동 규제를 완화하였으며, 2023년에는 일반유권자도 선거기간 중 중앙선관위 규칙으로 정하는 규격 범위 내에서 소형의 소품등 표시물을 본인의 부담으로 제작 또는 구입하여 몸에 붙이거나 지니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통합 선거법 제정 이래 시설물설치 등의 금지 및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의 금지 기간이었던 ‘선거일 전 180일’을 ‘선거일 전 120일’로 단축하여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지 않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선거법은 ‘공정’보다 ‘자유’를 강조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작년 연말 선거운동 목적으로 실제와 구분이 어려운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가상의 영상 등을 규제하는 일부개정법률이 공포된 것을 보면 선거법이 지향하는 바는 ‘자유’와 ‘공정’ 중 어느 하나라기보다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공정’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정된 선거법으로 악의적인 딥페이크 영상을 규제함으로써 비로소 유권자의 선거의 자유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청사 앞의 조형물이 표현하고 있는 가치의 균형을 가슴에 새기면서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목전에 두고 나와 선거관리위원회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소중한 가치를 다시 한 번 되뇌어 본다. 무수한 개정을 통해 결국 선거법이 얻고자 하는 것, 바로 ‘자유’와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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