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가을이 왔다. 2023년의 가을이다. 예전 가을은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로 덮인 삭막한 가을의 일상을 보냈다. 올해는 달라도 많이 다른 것 같다. 일상을 되찾은 가을의 분위기는 언제 코로나 사태를 겪었는지를 잊은 듯하다. 사람들의 모습에도 자유로움이 넘치고 마스크를 벗어버린 환한 모습에서 우리가 평소 누리던 여느 가을의 모습을 되찾았다. 가을을 반기는 듯 각종 축제와 체육대회의 열기도 마냥 뜨겁다. 대부분이 코로나 기간에 중단되었던 행사가 재개되는 것들이지만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도 있어 이채를 띄운다. 잔뜩 움츠렸던 지난가을과 너무나 대조되는 주변 분위기다. 코로나로 험악한 분위기를 보였던 지나 간 가을의 사회상이 언제였나 싶다. 예식장도 활기를 되찾고 각종 모임도 아무런 제약 없이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부터 지난가을과 대비되는 2023년 가을의 모습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을의 모습이다. 태풍을 이긴 들녘의 풍성함도 이 가을의 정취를 새롭게 하는 것 같다.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지절(天高馬肥之節)이라고 일컫는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하늘은 맑고 곡식은 결실을 보기 좋은 계절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런지 높푸른 하늘과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성큼 다가온 가을을 체감하게 한다. 어느덧 무더위가 물러가고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자연의 모습에서 변치 않는 위대한 섭리를 느끼게 한다. 곳곳에 피어난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의 한들거림도 빼놓을 수 없는 풍광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제 가을이 시작인지라 코스모스 피는 길이라는 대중가요도 이 가을의 시작을 장식하는 노래로 정취를 더한다. 가을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는 늦가을로 이어질 때는 낙엽이 가는 길이라는 대중가요가 또 가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무엇보다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탐스러운 과일이 넘쳐나는 올가을의 들녘이 수확의 계절로 다가와 넉넉한 마음을 안겨준다.

가을의 정취가 그 어느 해 보다 물씬 풍기는 2023년의 가을은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맞게 된다. 추석 연휴도 무려 6일이나 이어진다. 이렇게 길게 연휴가 이어진 적이 언제 있었을까 싶다. 지난 몇 년간은 추석 명절을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고 통제적 상황에서 보내야 했다. 숨 막히는 삭막한 코로나 상황에서 추석다운 추석은 실종되고 말았다. 명절 분위기는 고사하고 답답한 코로나 일상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연일 환자 발생 숫자만 세고 사는 세월을 보냈다. 이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는 가을을 맞았다. 이런 일상을 되찾은 시간이 사실 그리 길지 않았지만, 어찌 보면 한참을 지난 듯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특히 어린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가렸던 마스크가 사라지니 더욱 평화로운 가을의 모습이 다가선 듯하다. 올 추석 연휴가 긴 것은 마치 코로나로 빼앗긴 지나간 추석의 아쉬움을 마음껏 달래라고 하는 새로운 선물처럼 느껴진다. 가족과 친척, 친지들이 고향에서 이런저런 제약 없이 이 가을의 추석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게 되어 긴 연휴의 의미가 더욱 새롭다.

1년 중 가장 풍성하고 넉넉한 날인 추석은 가을의 서막과 함께한다. 추석의 여유로움이 배어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加也勿 減也勿 但願長似嘉俳日)’라고 일컬어왔다. 참으로 정감이 넘치는 여유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코로나로 빼앗긴 우리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다운 추석을 올가을 다시 찾았다. 올 추석은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먹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 빌고, 강강술래를 하고 놀며, 조상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는 풍요로운 날의 세시풍속을 자라나는 세대들도 익히는 날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가을을 맞았는데도 정치권만큼은 악을 쓰고 핏대를 올리며 난장판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국민의 생각과 엇박자를 내며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대립과 갈등, 투쟁에만 혈안이 되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늘 상습적으로 정치투쟁만 일삼고 있으니 이를 보는 국민은 그저 한심할 뿐이다. 가을이 왔는데도 이들은 마치 한 겨울 엄동설한에 머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삭막하고 강퍅하다. 말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다. 사생결단식이다. 덕스럽고 인자한 사회 지도자나 정치인의 모습은커녕 위선과 거짓이 난무하고 콧잔등 아물 날이 없다. 국회는 정쟁의 장으로 변모해 국민을 위한 생산적인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내세우며 민생을 입버릇처럼 외치지만 기실 표리부동한 언행으로 신뢰감을 잃고 있다. 교만한 정치 행각과 부정부패로 검찰과 법원을 들락날락거리고 있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개념이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피해자는 성실히 일하는 평범한 우리 국민이다. 이 가을이 지나고 7개월도 채 남지 않은 내년 4월 10일 22대 총선에서는 국민이 퇴출해야 할 정치인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이 가을을 혼돈으로 몰고 가는 수준 이하 정치인들을 기억하고 솎아내야 할 중차대한 시점인 것 같다. 가을이 왔지만, 가을을 느끼지 못하는 무리가 정치권에 너무나 많은 것은 그만큼 구린데가 많다는 방증인 듯하다.

분명한 것은 이 가을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이 가을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저해하는 그 어떤 모습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풍요로운 계절만큼이나 그늘진 곳의 이웃들, 복지 사각지대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도 생각해야 한다. 풍요 속에 빈곤으로 우리 사회 생활고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가족들의 소식이 끊기질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교사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탁상공론에 머물지 말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잇따르는 불행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 하루속히 평화롭고 질서 있는 분위기를 되찾아야 한다. 아동학대도 절대 금물이지만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교사를 황당하게 괴롭히는 사태가 재발해서도 결코 안 된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국민을 괴롭힌 암울한 시기를 불러왔지만 이제 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 새롭게 맞이한 2023년의 가을은 사악한 기운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밝고 희망찬 시기를 맞아야 한다. 하루하루가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행복 지수를 높이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에는 너와 내가 있을 수 없다. 우리 공동체 모두의 일이다. 차제에 이번 가을은 행복한 나라,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긍정과 화합의 전 국민 캠페인을 한번 펼쳐보았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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