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집중호우 피해가 막심하다. 12년 만에 처음이다.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지하차도 침수, 산사태, 제방붕괴 등으로 초비상사태를 불러왔다. 불과 3일 동안 내린 강우량마저 장마철 전 기간에 내리는 비의 양보다 두 배 이상이나 기록했다. 장마철 강수량으로는 이미 50년 만에 최대강수량이다. 폭우피해가 엄청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잠정 집계된 인명피해는 인명피해 사망·실종이 50명이다. 지난 9일부터 열흘째 이어진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인한 시설 피해가 2,148건이다. 하천 제방 유실 254건, 침수 187건, 낙석·산사태 161건, 도로 침수·유실 146건, 상하수도 파손 107건, 토사 유출 35건, 옹벽 붕괴 10건, 수목 전도 등 기타 201건 등이다. 침수 피해를 본 농작물은 3만2,894.5ha, 유실·매몰된 농경지는 450.7ha다. 이를 합친 규모는 여의도 면적(290ha)의 약 115배에 달한다. 축사와 비닐하우스는 52ha가 파손됐다. 가축도 79만 7,000마리가 폐사했다. 무엇보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의 황당한 침수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침수차량도 17대다. 호우로 인한 일시 대피자는 15개 시도 95개 시군구에서 1만1,276세대, 1만7,415명 발생했다.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참으로 황당한 것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고다. 사고 발생 1시간 30분쯤 전 15일 오전 7시 1분께 112신고가 접수됐다. “제방이 넘쳐 주민대피가 필요할 것 같다‘는 신고였다. 7시 56분경 ”지하차도 차량 통제해야 한다“라는 두 번째 신고가 접수됐지만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다. 첫 신고 두 시간이 지난 오전 9시1분에 경찰이 도착했다. 지하차도가 완전히 물에 잠긴 뒤였다. 미호천에서 200미터 떨어진 현장이 아닌 1km 떨어진 엉뚱한 궁평 제1지하차도에 파출소 근무자가 배치됐다. 이처럼 현장 접근이 실패하는 바람에 침수지역의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오전 8시 40분 이미 지하차도의 침수가 시작되면서 황당한 참사를 초래하게 된다. 홍수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통제가 필수적인데도 무사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경찰이 112신고를 접수하고도 교통을 통제하거나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다 부실한 임시제방보강공사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심지어 행복청은 미호천 제방 공사와 관련 부실 문제와 허가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총체적 안전 불감증이다. 해당 단체장조차 제때 파악도 하지 못한 채 늑장 대처로 참사를 불렀다는 점에서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재난대응체계의 총체적 부실이다. 중대시민재해로 수사도 들어갔다. 국무조정실에서는 교통통제 부분에 대한 감찰에 착수해 구체적인 늑장 대처 원인이 밝혀질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사후약방문격이 되고 말았다. 재난 시를 대비한 유비무환의 자세가 결여된 한심한 탁상행정의 일단을 보게 되어 씁쓸하다.

반면에 경북 예천 산사태 현장에서는 15일 새벽 3시부터 마을 주민들을 대피하도록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도와준 3명의 주민이 더 큰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59살 최병일씨와 66살 유재선씨, 62살 박우락씨이다. 산사태 발생 직후 헌신적인 주민 구조활동이 회자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사고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내용이다. 오송 사고는 신고 시 즉각적인 교통통제 등 대처 활동을 벌였다면 황당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홍수경보가 내려지고 주민대피가 필요하다는 긴급한 신고를 묵살하고 안이하게 대처한 이유는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통화기록도 상세히 남아있어 이를 밝히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북 예천의 주민 3명이 새벽 3시에 나서서 주민들의 대피를 독려하지 않았다면 더 큰 참사를 불렀을 것이다. 이런 자세가 오송 참사에서는 왜 없었는지 안타깝다. 이번 집중호우에서 발생한 경북 예천과 충북 오송의 사고 사례는 두고두고 교훈적으로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집중호우로 충남과 전북에서 제방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금강의 논산천 제방 붕괴와 공주시의 침수사례는 보 해체와 개방과 관련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주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세종보를 해체하고 공주보의 부분 해체. 백제보가 상시 개방이 되면서 빚어진 사태로 전 정권의 무모한 정치적인 보 해체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특히 조작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보 해체를 결정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전 정권의 환경부 장관이나 정치적 행각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홍수통제와 갈수기 물 자원을 활용을 위해 진행된 4대강 사업을 정치적으로 폄훼하면서 조작적 데이터로 막대한 예산을 들어 기어이 수중보를 해체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갈수기는 갈수기대로 물 부족에 시달리고 홍수기에는 홍수기 때로 지금처럼 물난리를 겪고 있다. 이번에 이런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정치 행위의 일단을 보게 된다. 충청과 전라 지역에 호우피해가 큰 이유 중 하나로 전 정권이 보(洑)를 해체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금강·영산강의 5개 보(洑)를 해체하거나 상시 개방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전 정권의 결정이 결국 해당 지역의 물난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도 철저히 규명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문제가 드러나면 관련자들을 모두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

치산치수는 유비무환의 자세에서 비롯된다. 백년대계를 바라보는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도 태양광을 설치한다면서 산림을 엄청나게 파괴한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산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산림을 훼손하고 태양광을 설치한 곳이 상당수가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작년 6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가동 중인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무려 1만5,220개다. 벌채된 입목은 5,131헥타르에 259만8,000여 그루다. 이 때문에 태양광 시설이 환경파괴시설로 지목된다. 급격한 산림 훼손으로 여름철 집중호우 시 산지 태양광 인근 주민의 불안감으로 분출되고 있다. 정부는 매년 산사태 위험성이 높은 설비 위주로 안전 점검을 하고 있다. 산자부가 올해 2월 산사태에 취약한 태양광 설비 1,408개를 선정해 상반기 내내 점검했다. 하지만 산지 태양광 시설을 관리·감독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주민 불안을 증폭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 집중 호우시 산사태 위험지역으로 연례행사처럼 두고두고 안전 문제가 떠오를 것은 명약관화하다.

무엇보다 불행한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취약해진 곳에서 언제 어떤 불행한 산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사후약방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고가 벌어진 뒤에 요란을 떨어봐야 이미 때는 늦었다.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수재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국가적 재난을 접하면서 유비무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예견되는 안전사고에 대한 늑장 대처로 오송지하차도와 같은 황당한 비극을 초래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워야 한다. 유비무환의 자세가 너무 미흡해 참사를 불러왔다. 차제에 재난대응시스템을 손봐야 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은 뒷북 행정은 금물이라는 뼈아픈 교훈을 이번 집중호우는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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