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신선(花中神仙)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또한 어린이는 안온한 환경에서 마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각자의 운명은 이러한 수순과 궤(軌)를 거부하는 아이러니(irony)의 폭풍 한설(暴風寒雪)까지 몰고 오는 게 얄궂은 우리네 삶의 어떤 역풍이 아닐까 싶다.

가난한 집안에서 5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지만, 부친께서 일찍 영면하셨다. 가뜩이나 찢어질 듯 가난했던 살림살이는 그 소년을 소년가장으로 내모는 암초로 작용했다.

새벽부터 우유 배달, 신문 배달 따위로 동분서주했지만 견고하고 집요한 가난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빈곤에 지친 그 소년은 급기야 극단적 선택까지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죽는 게 어쩌면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각자의 삶 아닐까. 여기서 심기일전한 그 소년은 악착같이 살고, 남보다 더 배우기로 마음의 물꼬를 바꾼다.

고된 야학에서 주경야독하면서 마침내 1978년 소위 ‘신의 직장’에 입사하게 된다. 그리곤 주변을 돌아보니 지난 시절 자신처럼 고생이 막심했던, 그늘지고 소외된 소년.소녀 가장들이 마치 돋보기로 보는 양 크게 보였다.

순간,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들에게 인생의 멘토가 돼줘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남다른 인생 굴곡과 역경을 딛고 만인의 모범이자 현대판 '페스탈로치'에 다름 아닌,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에 빛나는 모 단체의 고문님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그분과 인터뷰를 하면서 질의응답을 나누노라니 같은 59년생 베이비부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지난 시절 실제 소년가장으로 고생이 막심했던 나의 과거가 오버랩 되면서 가슴까지 먹먹했다. 아무리 부자일지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를 베풀기는커녕 삼순구식(三旬九食)의 가난한 이웃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오만함까지 보이는 경우도 잦다.

이런 관점에서 그 고문님은 진정 화중신선(花中神仙)으로 보였다. 이는 ‘여러 가지 꽃 가운데 신선’이라는 뜻으로, ‘해당화’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감동의 인터뷰를 마친 뒤 돌아오는데 작년에 자원봉사와 연관하여 취재한 바 있는 면담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홍 기자님 정말 고맙습니다! 유명한 문화재단에서 기자님께서 쓰신 저의 ‘봉사 스토리’를 검색으로 알아본 뒤 저를 찾아와 잠시 전에 취재하고 갔어요!”

순간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생각에 내 기분도 덩달아 하늘을 붕붕 날았다. 이는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 남에게도 이로운 일'이라는 의미다. 자원봉사든 취재 봉사든 그 본질은 꽃보다 고운 이타심이다.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