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열 (행정학박사, 국가발전정책연구원장)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수사로 일촉즉발의 분위기다. 선거는 돈과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돈 선거·정경유착’ 청산의 최대의 화두가 정치개혁이다. 국민은 한목소리로 ‘정치개혁 없이 더 이상의 국가발전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이 국민이 그렇게 간절히 바라는  정치개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치개혁의 바람직한 목적과 방향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박세일 교수는 정치개혁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정치의 질(質)과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두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정치가 전문정책능력, 국민통합능력, 국가지도능력을 갖춘 국가경영형 정치가 아니라 권력 투쟁형 정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의 질과 수준, 정치적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국회의원이 청렴해야 국가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에서 생산성은 없다. 정치는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정치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삶을 결정한다. 정치는 대외적으로 안보를, 대내적으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일을 한다. 우리 삶에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은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정치권과 언론계를 꼽는다. 불합리한 법과 제도, 규제로 인해 부패를 유발하는 사회문화가 만들어졌다. 고비율 정치구조가 부패 사회를 만드는 데도 일조했다. 큰 책임은 국회와 국민이 함께 져야 한다.

2023년 1월 9일 여야 중진 9명의 제안으로 여야 국회의원 130여 명이 참여한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이 지난 30일 출범 선언문에서 ‘대립과 혐오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최대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정치개혁안’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선언문에서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국민에게 큰 실망만 안기고 있다’ 그 이유를 ‘국민의 투표 절반 가까이를 사표로 만드는 소선거구제’에서 찾고 있다. 이 ‘승자독식·패자배제’의 선거제가 민의를 거스린지가 오래되었다. 진보·보수를 망라한 65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지난 18일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할 때도 똑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정치학자들 역시 그간 선거구제의 폐해를 지적했었다.

지난번 한국갤럽이 실시한 ‘주요 현안 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선 추진해야 할 과제로 정치개혁이 꼽혔다. 현 집권세력은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그중에서도 노동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치 개혁(39.2%)이 노동 개혁(18.9%), 교육 개혁(11.2%), 연금 개혁(10.8%), 기업규제 개혁(6.9%), 건강보험 개혁(6.2%) 등을 단연 압도한다. 노동·교육·연금 등의 3대 개혁도 정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국민 다수가 정치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한 이번 조사 결과는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야의 대립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럼 정치개혁은 실제 가능할까? 민주화 이후 정치개혁은 크게 ‘제도 개혁’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져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과 정당조직의 개혁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주로 현재도 지배정당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양대 정당의 독점을 가로막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을 가능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현행의 1인 2표 정당명부제다. 정당조직 개혁은 주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 함양을 위한 것이었다. 대통령 후보 등을 당원 혹은 국민 참여를 통해 선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는 등 정당조직을 특정 정치인이나 계파 등이 독점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관료·언론·기업인은 국가 미래를 책임지고 선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열린 마음으로 국가의 방향과 역할에 따라 국가의 명운(命運)이 결정된다. 특히 정치권 공존의 지혜, 서로 협력하는 나라가 선진국, 그렇지 않은 나라는 쇠망의 길을 걷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1995년 4월 13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중국에서 한국 특파원에게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한, 그의 발언은 정치권을 매도하고 정부를 비판했다는 오해를 낳으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민·정부·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서로 합심하면 좋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을 수가 있다고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가장 험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자가 바로 기업인이다. 기업인은 경제적 이익을 찾고, 관료는 조직 내 직위와 출세, 정치인은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돈, 권력, 명예 모든 것을 추구하니까 충돌이 더 심하다. DNA로 구분할 때 세상 흐름에 가장 민감한 게 기업인이라면, 가장 둔감한 게 관료와 정치인이다. 예를 들면 기업인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망할 수도 있기에 하루하루가 생존 투쟁이다. 패배하면 사라진다. 행정관료는 ‘복지부동’을 해도 매달 월급이 나온다. 국회의원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별 차이가 없다. 정치인은 역할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도 표만 얻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

세계는 변화의 태풍이 몰아치는데 우리 정치권은 점점 나락(那落)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치인은 미래 비전과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도 당리당략의 노예가 되어 소모적 정쟁에 쏠려 나라를 어지럽게 한다. 행정과 정치는 규제와 권위주의라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언제나 국민을 대표하고 민생을 해결한다고 한다. 민생이 무언가. 국민의 살림이고 생계다. 요즈음 정치행태를 보면 어느 나라 국민을 대표하는지 모르겠다. 언론은 저마다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사실 그대로 이치에 맞는 의견이나 주장을 한다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을 내걸고 있다. 지금 언론이 그럴까. 한쪽으로 치우쳐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결론은 2024년 국회의원선거는 많은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후보자를 뽑아야 한다. 지방 의회가 있는데, 국회의원 300명은 너무 많다. 9명의 보좌진을 두고 4년 동안 무노동일지라도, 세비를 챙기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염라대왕도 부러워한다고 한다. 당선되면 딴소리하는 정치가 아직도 후진성을 벗지 못한 탓이다.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는 ‘우리는 물 한 방울을 보면서 바다를 생각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매일 물을 마시면서도 민심의 바다 생각보다 당장 유·불의 얄팍한 계산으로 시야가 짧다. 특권만 누릴 뿐 책임지는 법은 없다.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정치는 4류를 벗어나기 힘들 듯하다. 그 책임의 주체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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