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2022년 임인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검은 호랑이 흑호의 해가 지나고 2023년 계묘년 흑토끼의 해를 향하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남은 탓인지 대설주의보가 내리고 겨우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흰 눈으로 뒤덮인 산하의 풍광을 모처럼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연말에 코로나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통제 속에서 보내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저무는 2022년을 아쉬워하는 송년 모임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네 일상은 평상을 되찾고 있다. 다만 마스크만 쓸 뿐이다. 식당, 커피숍, 다중집합장소 등 모든 곳이 코로나의 공포로부터 탈출하고 있다. 이제는 감기 정도로 치부하는 시대로 접어든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백신 접종은 계속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세 종인 오미크론 BA.5 변이에 맞게 개발된 BA.4/5 기반 2가 백신 동절기 추가 접종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하루평균 6만5천여 명 수준으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월 20일 최초 발생 이후 전국적 누적 확진자는 이미 2,8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 절반 이상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던 날은 2022년 11월 9일이었다. 이제는 단계적 일상회복인 위드코로나로 코로나 공존의 시대를 맞았다. 아예 실내마스크 의무를 완화하자는 논쟁도 나오고 있다.

3년 만에 크게 달라진 것은 사회적 분위기다. 각종 행사와 축제, 결혼식도 차질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집회도 아무런 규제 없이 열리고 있다. 어린이 유치원도 학부모들을 초청해 각종 발표회를 갖고 있다. 스포츠경기에도 관람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서울에서는 주말이면 이런저런 대규모 집회가 수시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0일에는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10만 명이 넘는 종교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는 존재하지만 이제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실 그동안 일상을 통제당한 지긋지긋한 코로나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마스크 세상에서 살았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랬다. 하지만 이제 유럽이나 미국 등지는 마스크를 아예 쓰지 않고 있는 곳이 많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의 모습을 보면 마치 코로나 사태가 언제 있었느냐 할 정도의 관중 모습이다. 분명 코로나의 공포는 사라졌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함께 공존할 뿐이다. 이런 변화의 시대를 2022년은 12월에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있다. 이른바 정쟁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나라 정치는 협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수준이 낮은 정쟁과 싸움은 늘 멈추지 않고 있다.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그래도 봐 줄 만하지만 늘 치졸한 정쟁의 연속이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정도로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여당과 야당의 정치 행각을 보면 이들 정치인이 무슨 이념과 철학을 갖고 함께 모여 정치집단을 이루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이른바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이 틈만 나면 치고받고 난리다. 증오의 정치, 미움의 정치, 반목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극심한 경제난으로 힘들게 사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말로만 국민이다. 나라의 추진 동력을 되살리고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려는 정치적 노력은 온데간데없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도 불법으로 얼룩진 화물연대 파업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올해 두 차례 10조 4천억 원의 총 피해 규모라고 한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차제에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런 뼈아픈 교훈을 던져준 2022년 12월이기도 했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국민이 느끼는 것은 정치개혁이 절실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올해 정권도 교체되고 지방자치 권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정치는 발전적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특히 국회가 그렇다. 의회민주주의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수당의 일당 독재를 하고 있는지 국회의 모습은 국민 실망 그 자체다. 사사건건 부딪치며 정쟁을 일삼고 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합의를 해내는 것을 보기 힘들다. 야당이 다수당이고 여당이 소수당이라는 점 때문인지 툭하면 파행을 일삼고 있다. 국민을 위한 예산을 갖고도 그렇고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인력 인프라 구축에도 몽니가 자리를 잡고 있다. 법인세 인하를 놓고도 마치 부자 기업들을 위한 것인 양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여기에다 정치인들의 부패사건이 끊이질 않고 터지고 있다. 뇌물수수혐의로 체포동의안까지 국회에 접수되어 있다. 앞으로도 더 나올 것 같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정치지형이 요동칠 것이다. 특히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국회의원에서부터 뒷돈 챙기는 국회의원, 각종 개발 비리 의혹에 연루된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추한 모습들이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정치개혁, 국회 개혁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판이나 인물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판과 새 인물의 등장이 절실한 이유다. 지금 같은 정치는 민주주의 정치가 아니다. 지금 같은 국회의 모습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도무지 감동이 없다. 국회의석수를 100석으로 줄여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한해를 끝나가는 시점에서조차 내년도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마저 어겼다. 이런 퇴행의 정치가 법을 다루는 국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도 대한민국의 국회나 국회의원들은 우물안에 개구리 같은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2년 12월을 보내면서 보게 되는 대한민국 정치 자화상이다.

그나마도 12월에 국민에게 감동을 준 것은 월드컵 16강 진출이었다.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이루면서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감동 그 자체였다. 밤잠을 설치면서 응원의 열기가 뜨거웠다. 강호 포르투갈을 꺾고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많은 교훈은 던져주었다. 손흥민 선수 등 우리나라 선수들이 똘똘 뭉쳐 이루어낸 승리는 정말 값진 것이었다. 이래저래 지친 국민에게 12월에 귀한 선물이 되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이 돌아온 듯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초라하게 만든 국민 영웅들의 드라마였다. 이런 12월도 보냈다.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가 국민을 슬프게 했다면 이런 아픈 마음을 태극전사들이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로 위로했다. 올해의 감동은 비단 축구만이 아니다. 한국 방산에서도 이뤄냈다. 40조 규모의 폴란드 방산 수출의 가시화로 K-방산의 위용을 과시했다. 가성비나 신속한 공급 체계가 미국 독일의 무기를 제쳤다. 한국 방산 수출은 현재 8위지만 앞으로 5위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다 사우디 빈살람 왕세자가 방한해 40조 규모의 대형프로젝트를 우리나라에 풀었다. 대형호재다. 이런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진 2022년은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한 한해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격동의 2022년이 불과 10여 일 남았다. 이제 한해를 잘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기억을 떨쳐버리고 아름답고 귀한 추억을 간직하며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더 나은 내일과 더욱더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2022년을 보내는 마지막 달 12월이 아쉬운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복합적인 요인이 작동하고 있지만, 부동산값 폭락에서부터 물가인상, 고금리 등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서민들의 삶은 한해의 끝자락에서도 지속하고 있다. 2022년은 모든 면에서 난세였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비정상과 부정부패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모두가 체감하듯이 각종 송년 모임이 3년 만에 봇물 터지듯 이곳저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비록 힘든 한해였지만 이런 모든 것을 되돌아보며 떨친 것은 모두 떨쳐버리고 알찬 마무리로 2023년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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