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는 이른바 여론조사라는 것이 유행이다. 곧 민심을 파악한다고 실시하는 것이다. 언론사마다 여론기관을 선정해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지배적인 국민 여론인 것처럼 대서특필하며 갖은 분석을 쏟아내 놓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30%대라느니 야당 대표의 기소가 정치탄압이라느니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을 실시해야 하느니 난리다. 여기에다 여당의 전 대표라는 인물에 대해 요즘의 행태가 누구 책임이냐느니 하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고 마치 정의 사도처럼 재단하고 있다. 하지만 조작적 여론조사를 내놓은 여론조사 업체들 때문에 국민 불신의 골이 깊어 왔던 곳이 바로 작금의 대한민국 여론조사 기관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국민 정서나 민심에 맞지 않는 어딘가 현실감각에 맞지 않는 발표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아 왔다. 과연 나오는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 결과물을 누가 공신력을 더해주고 이것이 민심을 정확히 투사하고 있는지 검증해주느냐는 점이다. 그저 여론조사업체에서 언론사들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다는 점 이외에는 무한 신뢰를 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불신이다. 해당 언론사들의 성향에 맞춰 이상야릇한 질문으로 유도 신문을 하고 심지어 성향이 맞지 않으면 전화도 끊어버리는 식의 여론조사 사례는 유튜브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무엇인가 달라져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기관은 지난 9월 7일 현재 모두 92개 업체에 달한다. 지난 2017년 5월 9일 등록제 시행일에는 27개였으나 지난해 12월 31일 84개로 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등록이 취소된 곳도 31개나 되고 있다. 이들 여론조사 기관은 사실 모두가 영리법인인 주식회사들이다. 사실 여론조사 기관이라는 말이 맞지 않는다. ‘기관(機關)’이란 사전적 의미로 사회생활의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과 목적을 위하여 설치한 기구나 조직으로서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즉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등의 약칭으로 쓰인다. 사전적 의미 가운데 정보의 수집, 처리, 선전, 통제 따위에 관한 일을 전문적으로 맡아 하는 기관도 있지만, 이 역시 공공기관의 성격이 짙다. 마치 공공기관처럼 보이는 영리법인인 주식회사 여론조사 ‘기관’은 여론조사 ‘업체’로 명칭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다. 국가기관처럼 호도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관 단체들을 말할 때 영리법인을 일컫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잡아야 한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업체라면 그것은 여론조사 기관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분명 바로 잡아 국민에게 국가기관처럼 오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여론을 조작하는 업체들이 있다면 철퇴를 내려야 할 것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한 채 여론조사 명목으로 활동하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된다. 민심을 왜곡하고 조작하는 여론조사는 범죄 행위이다. 언론사들도 대오각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신력을 회복하는 길이 여론조사업체들이나 유관 언론사들의 자세이기도 하다.

형사사건에 연루된 피고나 피의자들을 여론조사로 재단하는 언론사들의 행태도 멈추어야 한다. 이는 범죄 수사 문제이자 범법 문제이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여론조사로 정치 탄압이니 누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는 여론조사를 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유죄냐 무죄냐 하는 형사사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당과 야당의 전·현직 대표로서의 문제가 아니다. 법대로 해야 하는 사안을 여론조사로 재단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다 보니까 국민도 이젠 헷갈릴 정도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자 SNS 시대다. 전화를 가지고 여론조사를 돌리는 방식도 전근대적이다. 대부분 1,000명 정도로 전국의 민심을 함축한다는 것은 어딘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여론조사기법이나 질문 문항, 모집단 등이 좀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시행하는 방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자칫 민심이 왜곡되어 오류를 범한다면 민주주의의 적폐가 여론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업체들은 신고제나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풀어져 있다. 이들은 공익업체가 아닌 영리 업체인 주식회사들이다. 한마디로 돈을 벌기 위한 영업 활동을 하는 회사들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등록을 취소시킨 업체들의 유형별 위반 사례를 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다. 유형을 살펴보면 질문지 작성 방법위반과 선거 여론조사 결과의 왜곡과 공표, 당내 경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성별과 연령대 등 거짓응답 권유와 유도, 허위 선거 여론조사 결과 작성·제출과 공표, 표본의 대표성 미확보, 편향 응답 유도에 이르기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렇게 여론조사 업체들이 민심을 왜곡하고 언론사들은 이를 공표하며 민심을 논하고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중앙선관위는 여론조사 결과 현황을 알림 마당에 올려놓고 있다. 조사의뢰자들과 조사업체의 명칭도 함께 나열되고 있다. 이들의 여론조사 결과도 과연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편향된 시각과 정론·직필을 외면하는 언론매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여론조사에도 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는 여론조사가 정치적 이념과 진영논리로 인해 색깔이 주어진다면 그 피해자는 국민이다. 이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조작된 여론의 결과로 국민과 정치를 재단하는 것은 대 국민사기극일 뿐이다. 위반업체는 가중 처벌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좀먹는 사악한 세력으로 단순하게 넘어갈 일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국민의 희로애락이 담긴 마음이다. 제 11호 태풍 힌남노의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고통과 눈물이 담겨 있고 수원 세 모녀의 안타까운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재래시장 상인들의 투박한 손길이 담겨 있으며 포장마차의 억척스러운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의 사연이 민심이며 남의 집을 전전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백성의 마음이다. 장애인과 소외당하는 이웃,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숨겨진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이 담겨 있다. 탐욕과 불법, 정쟁 정치인들의 허상을 지켜보며 한숨짓는 애국 애민 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모습도 있고 갈등도 있고 애환도 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2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지난해 말 기준 946만1,695가구로 전체 2,347만2,895가구 중 40.3%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1인 가구 수가 4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인 가구가 사상 처음으로 40%를 넘어서고 있다. 10가구 중 4가구 이상이다. 여기에는 상당수가 노인 계층이다. 전통적인 가족 단위의 해체이자 ‘나 혼자’ 사는 노인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민심에는 코로나의 지친 일상도 담겨 있다. 국민의 이런 마음을 허상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정치는 헛발질이고 민심을 역행할 수밖에 없다. 민심을 여론조사로 조작하고 왜곡하는 것은 천심을 배반하는 것이다. 거짓을 진실인 양 호도하는 불순세력들이 있다면 단호히 척결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든 여론조사 기관이든 정치인이든 누구든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국민의 이름으로 단죄되어야 한다. 민심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국민 주권을 외면하는 국민 배반자이자 민주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사악한 적폐 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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