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대전지방보훈청 인사팀장

녹음이 짙어지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은 아름다운 풀잎이 스스로 향기를 보내어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태양 속 뜨거움처럼 강렬한 위국헌신의 마음으로 나라에 목숨을 받친 숭고한 넋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접어들었다. 우린 그 거대하고 고귀한 희생 앞에 이내 겸허해진다.

6월 7일은 봉오동 전투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영화 ‘봉오동 전투’, 이 영화는 실화인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2019년 개봉되어 관객 수 478만 명을 불러 모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이다. 실제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만주 봉오동에서 일본군 정규군을 대파해 독립전쟁사에서 청산리 대첩과 함께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승전이다. 이 승전으로 독립군은 사기가 크게 진작되어 더욱 세력이 커지게 되었고, 청산리 대첩으로 가는 발판이 된 역사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그 중심에 홍범도 장군이 있었다.

작년 8월 15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영웅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봉오동 전투 101년이 지나서야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해방된 조국을 보지도 못하고, 그 품에도 안기지 못한 장군의 심정은 타국에서 얼마나 서러웠을까!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독립을 위해 희생한 장군의 유해가 고국의 품에 돌아오는 봉환식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의 상상속에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설움으로 이방인이 된 우리 민족의 해방을 위해 가족을 잃는 아픔속에서도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용기가 그에게는 얼마나 중요했으리라 생각하니 여전히 안타깝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 및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줄기차게 일제 침략 세력과 싸웠던 대표적 무장 투쟁가였다. 일본군 스스로가 ‘날으는 장군(飛將軍)’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처럼 사심 없이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국내는 물론 중국 만주,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주름잡으며 초지일관해서 독립전쟁을 주도한 인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마음속에는 오직 나라가 있을 뿐이고, 자기 몸과 가정은 없었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홍범도 장군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할 때이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독립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은 물론 가족들의 삶도 희생시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함께 그 가족들이 고통스럽고 참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억하는 것은 후손들의 당연한 도리이며 책무이다. 이들을 기억하는 것은 보훈의 최대 가치이며 민족의 긍지와 국가의 존재 가치를 되새겨 미래를 열어가는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다.

다시금 6월의 뜨거운 햇살은 찾아왔고, 이제 치열했던 전장의 공간들은 여러 계절이 지나면서 주변에 핀 들꽃, 나무, 바람만이 그날의 치열했던 항쟁의 순간을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총알 세례를 받으면서 독립을 향한 그의 신념이 얼마나 고귀하고 당당하였는지 세상에 알리고 말해주어야 한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용기라고 한다면 그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 조국을 지키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는 것이 용기였으리라! 그가 그토록 원했던 조국의 독립과 자유의 봄은 우리에게 찾아왔다. 우리는 봉오동 전투 102주년을 맞아, 그의 삶 그리고 신념이 아름다웠다고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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