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대전지방보훈청 보상과

10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한 중년 여성이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나는 대전지방보훈청에서 국가유공자의 상이등급 신체검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국가유공자 상이등급 신체검사는 공무수행으로 부상이나 질병을 얻은 군인, 경찰 등에 대하여 그 장애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 진행되며 국가유공자 등록 절차 중 일부이다.

나를 찾아온 중년 여성은 아들의 신체검사가 지연되는 것을 항의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이었다. 중년부인과 나는 상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나는 현재까지 진행된 과정과 지연되고 있는 사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으며, 최선을 다해 서둘러 마무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분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차분해지며 당신 아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분의 아들, 차◯○일병은 해병대 소속으로 경기도 연천에서 군 복무 중이었다. 상반기 전지훈련을 위해 이동하던 중 타고 있던 차량이 7m 계곡 아래로 추락하며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그 사고로 차일병은 머리, 가슴, 어깨, 팔을 다쳤으며, 특히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몇 차례의 수술을 했으며 두개골 성형을 위해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차일병 어머니는 아들 이야기를 하며 차일병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차일병은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침대 옆에서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었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으며 온몸에 힘이 없고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아들의 사고에 혼비백산했을 텐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어머니는 절망보다도 사랑이 가득한 온화한 표정으로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큰 사고에도 아들이 어머니 곁에 있음를 다행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들의 눈빛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져‘엄마가 너를 꼭 살릴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자주 말해준다고 한다.

얼마 전 나는 그 때가 생각나 차일병의 근황을 알아보았다. 차일병은 어머니와 내가 그의 이야기를 나눈 지 딱 1년 만에 어머니 곁을 영원히 떠났다. 91년생인 차일병이 23살 되던 해였다.

이제 며칠 후면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분단국가에서 지금도 국토방위에 젊음을 바치고 있는 현역 장병들이 모두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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