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 소설 중에 1940년에 발표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가 있다. 스페인 내전을 무대로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17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인 존 던(John Donne)신부가 쓴 시의 구절을 인용하였다. 1943년에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감동을 선사했다. 추억의 명작이기도 하다. 제목으로 쓰인 존 던의 시를 보면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건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領地)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린다.’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해명 그리고, 종의 상징에 의해 중후한 맛을 주는 시로 평가되는 산문시로 존 던의 기도문 중의 마지막 부분이다.
대한민국이 이른바 ‘검수완박’이란 희한한 입법추진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검찰이 얼마나 미웠으면 이런 법을 만들어 종이호랑이로 바꾸려고 하는가 싶기도 하다. 참으로 목불인견이다. 이를 강행하려는 현재의 여당과 이에 야합하는 야당의 행태를 볼라치면 이들이 국민행복을 부르짖던 위정자들인가 의아하기만 하다. ‘검수완박’을 골자로 한 이 법 제정을 서둘러 강행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보면 곧바로 답이 나온다. '검수완박'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추구했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그러다 뜬금없이 등장한 국회의장의 중재안은 이를 완화시켜, 기존 '6대 범죄' 수사권에서 '4대 범죄'인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의 수사권을 삭제하고, '부패', '경제‘수사권만은 남겨놓는다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흥정안이 나왔다. 이에 야당도 함께 뽕짝을 맞추고 있다. 한마디로 가관 중에 가관이다.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다.
정권교체일인 오는 5월 10일을 얼마 안 남겨놓고 사생결단식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묻는다면 답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교도소에 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법을 어겼어도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면 이를 수사하지 않으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과거 불법행적에 면죄부가 주어질 것이라는 추잡한 사고에서 비롯되고 있다. 국민들은 도로교통법만 어겨도 과태료나 벌금을 어김없이 물고 있는데도 말이다. 힘 있는 큰 도둑은 모두 놔두자는 희대의 악질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점차 고도화해가는 범죄양상을 살펴볼 때 수사권을 더욱 전문적으로 분화시켜 그 기능을 보강해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수사권을 박탈하고자 하는 것은 검찰개혁이란 미명하에 입법권을 악용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참으로 추하고 못된 국회의원들이다. 이런 인물들이 대한민국의 국회에 앉아서 국민을 대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범죄자를 수사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려고 공청회 등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무대포로 강행하고 있다. 여기에다 국회의장이란 인물이 졸속 중재안까지 내놓고 있으니 무슨 사오정 놀이하는 것 같다. 참으로 수준이하의 졸작이다. 국민의 안위를 위하여 법을 강화해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면죄부를 위하여 수사권을 박탈하려는 철면피성과 잔인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지난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모조리 교도소에 처넣고서 이제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니까 비겁하게 국회의석 수를 이용하여 악법을 제정하고자 혈안이 되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런 데에 놀아나는 야당 역시 역사의 심판을 면키 어렵다. 대역죄인과 매국노는 교도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 역사를 무서워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농락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사실 법과 질서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며 정치 권력자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6대 범죄의 수사권을 없애려다 협상안이랍시고 두 가지를 빼고 나머지 '4대 범죄'인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의 수사권을 박탈하여 검찰을 식물검찰로 만들려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것인지 답해야 한다. 삼척동자도 비웃을 일이다. 이것이 국민을 위한 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위한 것은 분명 아니다. 권력형 범죄자들을 위한 것인지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범법을 한 위정자들이 법망을 피해 마음껏 활보하고자 하는 추악한 심보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가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은 바로 이런 후안무치한 행태가 난무한 때문이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권력자들의 범죄수사를 막는 법을 만든다면 분명 국민저항을 불러올 것은 명약관화하다. 법조인들조차 이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의 하나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는 허울 좋은 논리는 이미 작동 중이다. 그래서 얻어진 것이 무엇인지부터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어찌 대한민국에서는 허구한 날 검찰개혁만을 외쳐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검찰의 칼자루를 피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 중에 착각이다. 한마디로 경찰을 우습게 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형사법 체계를 무너뜨리는 국회의 야합은 앞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어떠한 논리로도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이를 환영하는 자들은 한마디로 범법자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법과 질서를 부정하는 자들에 다름이 아니다.
이런 전대미문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도덕적 검증이 부실한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살펴보아야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덕성과 자질, 업무능력을 검증한다며 각 정당들이 난리법석이지만 아직도 함량미달인 사람이 버젓이 등장하고 있고 이를 내세우고 있다. 검증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그 검증잣대가 궁금하다. 잘못 선출된 위정자들이 펼치는 이런 악법제정의 칼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표리부동한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심한 배신감과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란 이런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휘두르며 주인인 국민을 보호하려는 생각은커녕 수사의 칼날을 피하려는 꼼수를 부리는 법안에 골몰하는 것은 국민의 대리인이기를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고 싶다.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고 있나‘도 묻고 싶다.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각종 범죄로 얼룩진 권력집단의 악행을 덮으려고 하는지 말이다. 지금의 국회의 작태는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고 이를 주도한 자들은 역사의 심판대에서 매국노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것임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자들을 모두 퇴출시켜야 한다. 국민을 생각하는 자세가 틀려먹었다. 참으로 추한 몰골들이다. 부끄럽지 않은지 하늘을 우러러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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