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4월이면 어김없이 'T.S. 엘리엇'이라는 詩人의 황무지란 시에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회자된다. 미국 태생의 영국 시인 T. S. 엘리엇(Eliot)의 유명한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나오는 말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첫 행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이 4월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사실 엘리엇의 “황무지”는 20세기에 들어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고 생명력을 가진 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서구인의 마음속 넋두리이기도 하다. 그들의 넋두리를 그대로 옮겨 삶의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사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함을 보여 주고 있다. 원래의 맥락과는 다소 동떨어진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엘리엇의 이 말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람의 정신 상태에 대해서도 적용되고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인가 유독 4월에는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신록의 4월이 원래의 시구의 의미와는 다르게 직설적인 잔인함을 담아 4월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 그러하다. 젊은 학생들이 많이 죽고 다쳤던 4·19 혁명. 수만 명이 희생당했던 제주 4·3 사건. 세월호의 참사도 4월에 일어났다. 공교롭게 이런 굵직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이구나 하는 자조적인 표현이 등장한 것이 아닐까 싶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아름다운 계절과는 대비되는 불행한 사건들이 시인의 시구까지 동원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4월은 잔인하다기 보다는 봄꽃이 만개하며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기지개를 펴는 약동의 계절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4월의 중반을 넘기면서 우리네 주변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오는 25일 고시 개정을 통해 현재 1급에서 2급 감염병으로 하향 조정된다. 지난 15일 '포스트 오미크론 대응 정부 계획'이 발표됐다. 그동안 우리는 오미크론의 특성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이제 일상을 최대한 누리면서 동네 병·의원에서 진단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일반 의료체계로의 전환된다.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방역·의료 체계로 돌아가기 위한 5월 하순까지의 로드맵도 나왔다. 2급 감염병으로 지정되면 음압병실 수용, 자가격리 등 격리의무가 해제되고 의료기관의 환자 즉시 신고 의무도 사라진다. 다만 정부는 방역·의료체계 전환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4주간의 이행기간을 거치기로 했다. 정부는 코로나19를 2급으로 지정하는 이달 25일 이전까지를 '준비기', 25일 이후부터 4주간을 '이행기'로 정하고, 포스트 오미크론 전략 이행 준비가 완성되면 '안착기'를 선언한다는 방침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18일부터 사적모임 인원 제한과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전면 해제되는 것이다. 현재 '10명, 밤 12시'로 규정된 사적모임 인원 제한과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은 완전히 사라진다. 299명까지 허용되던 행사와 집회, 수용 가능 인원의 70%까지 허용되던 종교시설 인원 제한도 동시에 없어진다. 경제활성화도 기대된다.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실내 다중이용시설 음식물 섭취, 마스크 착용 해제,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 조정은 각각 시차를 두고 시행된다. 잔인한 코로나19 대응방법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부터의 해방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감기증상으로 치부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생각 같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마스크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코로나 해방이라고 외쳐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오미크론의 전파가 멈추지 않고 있다. 참으로 지긋지긋하 잔인한 코로나19가 아닌가 싶다.

아직도 10만 명이 넘는 신규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하루 평균 2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확진자는 1,620만 명이 넘고 누적사망자도 2만 명이 훨씬 넘는다. 엄청나다. 이것이 지난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 환자(중국인, 35세 여성) 발생 이후 2년 2개월째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받아든 참으로 고통스럽고 잔인한 코로나19 성적표다. 물론 코로나19의 팬데믹은 전 세계적인 것이다. 훗날 코로나19는 과거 유럽의 역사를 바꾼 흑사병처럼 21세기 인류를 괴롭힌 질병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가 코로나 '엔데믹'을 향해 가고 있다. 사실상 독감처럼 관리하려는 시도이다. 격리도 하지 않고 관리된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해방이다. 주변 상황을 보면 아직 이른 듯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전히 어린이들의 감염사례가 잦고 가족감염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흡기의 고통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후유증으로 마른기침이 동반되고 쉽게 가라앉아 병원의원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우리나가가 세계 최초의 코로나 엔데믹 국가로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지는 단계별 전략이 과연 적합하게 맞아 떨어질지를 지켜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으로 중국 상하이는 집단 통제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튼 봄과 함께 단합대회나 체육대회, 축제, 회식 등 많은 행사가 줄을 이어질 것이다. 문화예술축제도 봇물 터지듯 개최될 것이 분명하다. 모처럼 봄의 향연을 즐기게 되어 벌써부터 설렘을 주고 있다. 때마침 5월10일 청와대도 전면 개방된다.

늘 회자되던 4월의 잔인성을 벗어나 이제 2022년 4월은 코로나 엔데믹으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아름다운 계절로 승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잔인(殘忍)은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질다는 말이다. 4월의 정취는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진 것이 아니다. 4월은 봄꽃이 만개해 온 산천을 아름답게 수놓은 그야말로 환상의 계절이다.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계절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어린이들의 환한 모습이 이제야 우리가 일상을 되찾아 가기 시작했음을 조심스럽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의 코로나 엔데믹이 방역포기가 아니라는 것을 명쾌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집단면역 이전 상황에서 감기확산 정도로 치부하며 각자도생하라는 안이한 태도로 국민건강과 안위를 소홀히 다루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오미크론은 번지고 있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마스크를 쓰고 불편한 일상을 보낼 수는 없다. 오미크론이야말로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인정 없고 모질기만 하지만 이제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다. 앞으로는 삭막한 황무지의 잔인한 4월이 아니라 평화와 행복이 시작되는 약동의 4월로 바꿔 불러봄이 어떨까 싶다. 지금부터라도 아름다운 계절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듯한 부정의 언어에서 벗어나 희망이 넘치는 긍정의 언어로 순화해 표현하는 것도 4월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싶다. 코로나 ‘엔데믹’이 ‘팬데믹’보다 더 긍정의 언어이듯이 봄꽃이 만개한 4월의 아름다움을 긍정의 마음으로 만끽해봄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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