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과 자녀의 부모 공경의 모습을 양적으로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더 클까요? 보통 부모의 자녀에 대한 희생적 사랑이 크다고 하겠지만, 옛날 자녀의 효행 사례를 놓고 본다면 꼭 그렇지만도 아닐 것 같습니다.

오로지 부모 봉양을 위해 자신들의 어린 자식을 희생시키려는 사례가 증명합니다. 물론 효를 위한 희생의 뒤에는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닙니다. 그러다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엽기적인 효행 사례도 곳곳에 전해 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상북도 경주의 ‘손순매아(孫順埋兒)’ 전설과 중국의 ‘위모매아(爲母埋兒)’ 전설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모 봉양을 위해 자기 아들을 땅에 묻으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가난 때문에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아들을 희생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물론 하늘이 도와 아들을 묻지는 않았지만, 상식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희생적 효를 실천한 이들은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가 되었습니다.

대전의 식장산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식장산은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습니다. 국경지대이다 보니 신라와 백제가 치열하게 싸우던 곳이기도 합니다. 산 아래는 제법 넓은 평지와 냇물이 흐르고 있어 옛날부터 “식장산 아래는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다.”라는 말이 전해 옵니다. 지금 150만이 사는 대전광역시가 들어선 것도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식장산에 옛날부터 여러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산에 식량을 저장하고 있다는 설화입니다. 백제의 군사들이 숲이 우거진 식장산에 식량을 쌓아놓고 싸움을 하였다는 기록에 연유합니다. 식장산에 산성이 겹겹 있는 것도 여기가 접경지대였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니 식량저장은 필수였을 것입니다.

또 다른 설화로 전우치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동살미(지금의 홍도동)에 살고 있던 전우치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일 간 또는 삼년간은 먹고도 남을 만한 보물을 식장산에 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식장산 아래의 넓고 기름진 뜰, 곧 한밭, 대전(大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전설입니다. 식장산 아래 마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젊은 효자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부에게는 슬하에 자식이 하나 있어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가난하여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부부는 홀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는 착한 부부였습니다. 아들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맛있는 산과일을 따기라도 하면 꼭 홀어머니에게 갖다 드렸습니다. 며느리도 산나물을 캐오면 먼저 어머니에게 드린 다음 장터에 내다 팔곤 하였습니다.

문제는 부부의 아들이 커가면서 생겼습니다. 홀어머니에게 정성껏 음식을 해드리면 아이가 먹어치우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궁리 끝에 어머니가 음식을 드실 때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습니다. 그 때마다 배고픈 아이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자신이 먹던 음식을 아이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부부의 어머니 봉양과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부는 어머니가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게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분 뿐 아니오. 어머니는 한번 돌아가시면 다시 돌아오지 않소. 짐승이 아닌 이상 효도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오.”라고 하며 아이를 산 속에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정성껏 봉양하려 해도 자식 때문에 효를 다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책이었습니다.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마루 양지바른 곳에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땅 속에 이상한 물건이 하나 나왔습니다. 솥이었습니다. 부부는 솥을 보며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묻지 말라는 신호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솥을 갖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솥에 곡식을 담아 두었습니다. 얼마 후 보니 솥에는 곡식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동전을 넣자 이번에는 동전이 넘치도록 가득 찼습니다. 효자 집안에 하늘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이후로 부부는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면서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아이도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난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부부는 솥이 어머니를 위한 하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는 솥을 원래 있던 곳에 다시 묻었습니다.

이후로 솥을 묻었다 해서 산이름을 식장산(食藏山)이라 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먹을 것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해서 식장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옵니다. 또 한편에선 원래 밥솥이 있다 해서 밥장산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법장산(法藏山)으로 쓰다가 식장산이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글·그림= 한국효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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