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세밑 분위기가 그 어느 해보다도 가라앉아 있다. 들뜬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경제 불황의 여파가 세밑한파처럼 마냥 매섭게만 느껴지는 연말이다. 구세군자선냄비의 모금실적이나 사랑의 열매 온도탑도 열기가 뚝 떨어져 이웃돕기의 온정도 메말라 있다. 어쩌다 이처럼 삭막한 사회분위기가 드리웠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1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진다. 실업자도 100만 명 시대, 실업자 3명 중 1명이 4년제 대졸자인 고학력 실업자이다. 공시생들도 40만 명이 넘는다. 구직 단념자들도 55만 명이 넘는다. 아주 비감한 통계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청년실업의 난맥상과 자영업의 위기를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청년백수 시대이다. 여기에다 정치마저 혼돈스럽기 짝이 없으니 도대체 이게 나라냐는 말이 나올 지경에 처해 있다.
정부가 일자리 위원회까지 만들어 고용창출을 꾀해 왔지만 유명무실화 되어버렸다. 전반적인 청년고용 상황이 좋지 않아 구직하다가 아예 포기해 버리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당연히 청년층 실업률도 높아지고 있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앞이 보이질 않을 지경이다. 최저임금상승에 부담은 느낀 사업주들이 벌써부터 가족경영체제를 선언해 아르바이트마저 손쉽지 않다. 상상이상으로 경제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경제가 어렵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면서 15년 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평균 자살률의 두 배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스트레스와 우울의 이중고를 앓고 있다. 2003년 이후 15년 동안 줄곧 1위이다. 더 증가해 인구 10만 명당 30명이다. 노인자살률도 1위 국가도 여전하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행복지수가 최악이다. 브루나이공화국이 부럽다.
올 연말에도 지난해에 이어 연말연시 이웃돕기 성금이 걷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랑의 온도탑이 오를 줄을 모르고 동력을 잃고 있다. 경제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 개인이나 기업들의 기부가 급격히 줄어들어 모금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다. 연말연시 이름 없는 천사들의 기부소식으로 훈훈함을 더하던 예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세밑 분위기이다. 사랑의 온도탑이 식어가는 모습에서 대한민국 사회의 진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소리가 오히려 거리를 공허하게 하고 있다. 유난히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이번 연말이 더욱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수사관이 쏟아내는 폭로내용을 갖고 여야정치권이 연말 극단적으로 대립하며 온통 난리가 아니다. 도대체가 무엇이 정의인지 아니면 부정부패비리가 어디까지 만연되어 있는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상상이상으로 고조되고 있다. 나라가 진통을 겪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하던 위정자들의 구호가 메아리처럼 들리는 연말이다. 서민들은 경제난으로 신음하는 상황에서도 국민을 위한다기보다는 온통 추악한 행태로 양두구육의 정치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으니 국민들의 실망감과 자괴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문가지이다. 대립과 반목의 정치는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하다. 정치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칫 혼란과 혼돈의 소용돌이가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경으로 몰아 갈 수도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팽배하다.
남북문제도 녹록치 않다. 비핵화를 위한 남북대화는 진전은커녕 앞으로 북한이 100개 이상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뉴스까지 타전되고 있으니 영문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진행해온 남북대화는 무엇이고 남북철도착공식은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이런 소식들은 그간의 진행과정을 놓고 볼 때 앞뒤가 맞지 않아도 너무 맞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남북대화에 대한 불신도 만만치 않다. 그만큼 국민적 공감대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값진 것이다. 전쟁의 황폐함과 비참함을 우리는 중동의 모습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런 불행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평화를 갈망하고 지키려는 노력은 너무나 소중하고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불신과 적대감 속에서는 이룰 수가 없다. 상호 신뢰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가야할 길이 너무나 먼 것 같다. 평화공존의 길이 이처럼 어려운 것인지 국민들의 마음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연말이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일본, 중국의 태도도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의 주변 열강들 사이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늘 그래왔듯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력자강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늘 시비를 일삼고 있는 일본이 그렇고 방공식별구역을 넘나들며 간을 보는 중국이 그렇다. 방위비분담금을 배로 내라고 옆구리를 찔러대는 트럼프의 미국도 그렇다. 주변 열강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위상을 지켜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어떨 때는 애처롭기만 하다. 국방력이 출중한지 알았더니만 일본 자위대의 방위력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말만 독도 방위이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일본이 트집을 잡으며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다. 유독 대한민국을 만만히 보는 아주 교활한 일본이라는 점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극우 정치인들과 극우세력들이 그렇다. 오히려 다수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2018년 세밑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자강의지가 드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8년 무술년은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격동의 한해였다. 남북대화의 흐름이 싹쓸이 지방선거로 이어지고 평화무드가 반짝 조성됐지만 지금은 소강상태이다. 오히려 남남갈등과 불신이 커지는 양상이다. 앞으로 과연 어떠한 반전이 이루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해온 대한민국의 올 한해의 진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하다. 다사다난의 정도를 넘어 위기의 상황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었나를 우리 모두는 자성해야 한다. 특히 눈만 뜨면 국민과 서민을 부르짖는 위정자들이 책임감을 통감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아직도 이전투구에 혈안이 되어 국민 불신의 단초를 제공하는 여야정치권은 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불행과 경제위기, 남남갈등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올해의 송구영신은 썩어빠진 부정부패, 비리, 내로남불의 위선 등 암울한 기운과 구태를 모두 떨쳐버리고 다시 뛰는 새롭고 희망찬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띠의 해를 맞이하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2019년은 그야말로 정신이 바로 서며 풍요로움과 넉넉함, 그리고 행복이 가득한 긍정의 대한민국 사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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