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전에 없이 자주 혼잣말을 합니다. ‘아! 좋다’, ‘예쁘다’라는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의 물음에 답을 하는가 하면, 구두에게도 말을 걸고, 꽃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러곤 혼자 웃습니다. 언젠가는 혼잣말 하는 사람 뒤를 걸으며, 나도 같이 혼잣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누군가 있었다면 정신 상태를 의심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나이를 더하며 혼잣말이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퇴직한 지인 분께서는 “하나 둘 떠나고 나면 혼잣말을 하게 된다면서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며 훈수를 두셨습니다. 어느 시인은 가슴에 구멍이 생기면 혼잣말이 많아진다 했지만, 혼잣말은 단지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친구로 만드는 지혜의 한 방법이라 나름 규정지어 놓고 그렇게 산답니다.

심리학의 모차르트라 불리는 레프 비고츠키는 혼잣말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말과 생각 발달의 위대한 경로다”라고 말했습니다. ‘혼잣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라는 데 깊은 공감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좋은 하루가 밝았다고 혼잣말을 합니다.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말한 대로 아름답고 좋은 하루가 눈부시게 펼쳐집니다. 언제부턴가 혼잣말의 힘을 믿으며 매일 그렇게 합니다. 생각을 정리 하거나, 운전할 때 더 자주합니다. “녹음해 두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들 때는 글을 쓸 때입니다. 지나간 혼잣말을 가져올 수 있다면 좋은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도 있을 테니 말이죠.

스님들이 부처님 앞에서 예불 때 외는 독경(讀經)소리나, 어머님들이 혼자 중얼 중얼 하시던 신세타령 소리도 혼잣말입니다. 주절주절 대는 혼잣말이 자성(自省)의 소리로, 또한 스스로를 위안하는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적 울림을 줄 수 있는 자신을 향한 혼잣말, 고단한 삶에 위안이 될 혼자만의 넋두리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괜찮다 싶습니다.

4시가 지나가는 창가에 기대 바깥 풍경을 바라봅니다. 떠다니는 오후가 청사 정원에 무심히 서 있는 소나무를 툭 치고 지나갑니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초등학교의 텅 빈 운동장을 유월의 초록 바람이 건너갑니다. “내 마음도 초록처럼 편안해진다. 행복하다” 혼잣말을 합니다.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사물들의 오후가 떠다닙니다.

어느새 유월입니다. 흔히 6월을 절반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일 년의 딱 반이 되는 지점이지요. 비어있던 들판은 모내기로 푸르게 채워졌고, 녹음은 더 늠름해졌습니다. 친정집 대문 옆에 서 있는 줄장미가 화려합니다. 개망초 꽃도 무더기로 피었습니다. 돌보는 것 없이 함께 살기만 했는데도 말입니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시간을 먹은 탓이겠지요.

나머지 반년을 생각합니다. 세상은 아무나 잘 쓸 수 없는 원고지 같아 쓰고 지우고 다시 씁니다. ‘구하는 데 있어 마음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무괴아심(無愧我心)’, 오늘도 혼잣말을 중얼중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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