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이해인 수녀님의 ‘5월의 시’로 오월의 문을 열었습니다.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중략)/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비 그치고 솔솔 부는 바람에 연두와 초록이 어우러진 향기가 실려 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런 날들입니다.

오월 들어서 비가 잦습니다. 어린이날 연휴동안 내내 장맛비처럼 내렸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봄비가 잦습니다. 몇 년 전 극심했던 봄 가뭄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수많은 눈물방울들이 세상 먼지로 떠 있는 영혼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새 터에 부임한 삼월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오월입니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오월의 행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동안 참 부산했습니다.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일에 휩쓸려 마음은 한없이 무뎌지고 서두름만 몸에 붙은 것 같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좀 더 느끼고 감동하며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연두와 초록 빛 사이로 흐르는 투명한 햇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지...... 비단 일 탓만은 아닐 겁니다. 나이 먹을수록 잘 표현하지 않고 감동하지 않는 습관이 문제라 여겨집니다.

요즘 관내 학교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소규모 학교를 방문할 때면, 학교 내에 있는 나무와 식물을 아이들과 맺어줄 것을 권장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는 사랑스럽습니다. 나무와 관계를 맺는 순간 나무가 보이고 세상이 다르게 다가올 테니까요. 좋아하는 식물이나 나무 한그루를 가진 사람은 마음색은 물론이고, 생각의 결이 달라집니다.

나무를 비롯해 어떤 생명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지요. 관심은 자세히 보는데서 출발합니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며 매일매일 감동하는 습관을 길러 나갈 수 있습니다. 식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 찾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감동하는 습관, 그것은 바로 견고하고 단단한 생의 편린들을 반짝이게 하는 열쇠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두 팔로 안을 만큼 큰 나무도/ 털끝만 한 싹에서 자랐다는 노자 64장 수미(守微)편의 구절을 읽다가/ 나는 문득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감동은 대개 이렇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가 평소 아침 산책길에 자주 만나던 늙은 느릅나무 영감님 앞으로 다가갔다/ 느릅은 푸른 머리채를 풀어서 바람에 빗질하고 있었다/ 고목의 어릴 적 일들을 물어보아도 묵묵부답/ 다람쥐가 혼자 열매를 까먹다가/ 제풀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 그 자리에는/ 실낱처럼 파리한 싹이 하나/ 가느다란 목을 땅 위로 쏘옥 내밀고 있는 참이었다> 이동순 시인은 ‘늙은 나무를 보다’ 시(詩)를 통해 감동은 대개 이렇게 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시멘트 보도블록 틈새에서 노란 꽃을 피운 민들레를 보고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 모란 꽃 망울 터지는 축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세히’, ‘오래’ 보아 온 사람의 특권입니다.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제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행복을 찾는 쉬운 방법 하나를 물어온다면, 나는 집 근처에서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를 찾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관찰하며 감동하는 것입니다. 감동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행동에만 습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도 습관이고 감정도 습관입니다. 습관만 들인다면 감동은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감동에 익숙하다고 합니다.

봄비 내린 뒤 엷은 춘광이 얼치는 안개 속같이 마음이 아득해 지는 오늘 같은 날, 스스로 산으로 가 숲이 된 나무그늘과 생명을 키우며 매일 길 떠나는 여울소리 같은 시(詩)를 그리고 싶습니다. 푸르고 싱그러운 오월입니다. 믿음의 빛으로 어디에 있건 햇살과 같은 마음으로, 찔레꽃 향기로 감동하는 습관을 들이며 살아 야겠다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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