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선 향토사학자

대전의 문화재지정 40여개 산성중에서 제일 규모가크다.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의 동북 편 계족산 정상에 위치한 계족산성은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는 유서 깊은 석축산성으로 해발 431m의정상부에 성의 둘레가 1,037미터로 성의 높이가 높은곳은 11m까지 쌓았다 대전지역에 소재한 40여 개의 山城 중 규모가 가장 크다. 계족산성은 대전지역의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백제 계통의 산성이다.
계족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대로 산성에 올라서면 당시 신라의 영토였던 동쪽의 충북 옥천군과 북동쪽의 보은군이 마주하고 있어 군사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계족산성은 甕山城(옹산성)으로 추정되는데 백제가 멸망한 후에도 부흥군의 주요거점으로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신라군과 맞서 싸우다 수천 명이 전멸당한 백제인의 한과 넋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성벽의 일부가 남아있는 것은 돌을 엇갈리고 맞물려 쌓는 모 쌓기 기법의 축조방식으로 흙이 닿는 뒷면까지 이어져 쌓았기에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 계족산성 성안에는 병사들이 거쳐하였던 건물터가 6군데나 발견되었으며 장군이 지휘하던 장대지가 있으며 병사들이 통행 하였던 문지가 3군데 있는데 동문지, 서문지, 남문지가 아주 잘 남아있다 또한 그높은산 431m라는 정상에 석축으로 쌓은 우물터가 있는데 그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잘남아 있는데 이우물지는 공주 공산성(백제의 첫도읍지)내에 있는 우물지와 축조방식이 똑같다.
공주 공산성내의 우물은 금강 바로옆에 있어서 물이 자연 유수로 우물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나 특이한 사항은 계족산성 정상에 있는 우물지와 공산성의 우물지 축조방식이 똑같다. 이는 계족산 정상부에 우물지가 있다는것은 가히 상상할수 없는 실정으로 경이롭고 옛 선조들의 지혜와 축조방법이 얼마나 탁월 했던가를 말해줄수 있다. 대전시민이 계족산을 찾을때 꼭한번 다녀가보시기를 권장합니다.

鷄足山城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甕山城(옹산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라의 장군 김유신이 옹산성(계족산성)과 雨述城(읍내동)을 함락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계족산성은 신라 백제의 접경 지역으로 대단히 중요한 산성이었다.)
신라의 장군 김유신이 계족산성(옹산성)을 함락 하기전에 城으로 사람을 보내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주고 부귀를 기약할수 있다고 전하였지만 백제부흥군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신라군에게는 항복하지 않겠다고 절개를 지킨후 신라군의 공격으로 수천명이 살해되었던 백제의 민초들의 넋이 깃든 중요한 지역이다.

계족산성은 국가사적 제355호로 대덕구 장동 산85번지등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요하였던 지역임을 후대에와서 1991년10,31일에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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