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헌법재판소의 사상초유의 대통령 탄핵결정이 마침내 조기 대선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 이른바 장미대선이라고 이름을 참 예쁘게도 지었다. 탄핵이라는 단어와 장미라는 단어가 너무 극명하게 대조되어 다소 균형감각을 잃는 점도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지난 세계사를 들춰보면 영국에는 장미전쟁이라는 전쟁이름 답지 않은 전쟁도 있었다. ‘장미 전쟁’이란 영국의 랭코스터가와 요크가 사이에서 왕위 계승 문제로 1455년부터 1485년 까지 벌어졌던 양대 가문의 싸움이 곧 장미전쟁인데 재미있는 것은 랭커스가는 붉은 장미를 , 요크가는 흰 장미를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한 데서 장미 전쟁 이란 이름이 붙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장미전쟁에서 요크 가문은 랭커스터가의 헨리 7세(헨리 튜더)에게 패퇴하였다. 이 전쟁은 헨리 7세가 요크가의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맞아들여 튜더 왕조를 여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하여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합한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튜더 로즈라 하며 현재도 영국 왕가의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이면에는 이처럼 역사의 아픈 상처도 간직한 채 장미라는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대한민국에서는 장미대선이라는 이름으로 굴러가고 있다. 폭풍이 지난 언덕에 꽃이 피듯이 말이다.
장미대선이란 이름을 명명한 바엔 우리도 잠시 장미의 특성을 살펴보자. 장미는 18세기 말에 아시아의 각 원종이 유럽에 도입되고 이들 유럽과 아시아 원종간의 교배가 이루어져 화색이나 화형은 물론 사계성이나 개화성 등 생태적으로 변화가 많은 품종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18세기 이전의 장미를 고대장미(old rose)라 하고 19세기 이후의 장미를 현대장미(modern rose)라 분류를 하고 있다. 많은 연인들이 좋아하는 꽃이면서도 장미의 가시는 아름다움이 감추고 있는 유혹과 고통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노랑장미는 우정을 뜻하고 붉은 장미를 사랑과 열정을 뜻하는 식물로 연인들이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이다. 자연재배에서는 5월에 피는 꽃이 가장 아름다운 게 특징이다. 올해의 장미는 지난겨울 대한민국이 격동의 회오리에서 참으로 매서운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아픈 만큼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는 기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 아름다운 장미대선, 역사에 남을 장미대선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과 고통, 진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선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런 장미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들과 후보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우후죽순처럼 후보들이 난립하여 저마다 자신들이 차기 대통령 감임을 침을 튀기며 알리느라 난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개헌이라는 연대 고리를 형성한 정치권의 합종연횡에서부터 경제 안보 교육 복지 문제에 이르기 까지 나름대로 정견을 발표하고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썩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샤드문제와 관련하여 무엇이 진짜 국익을 위하는 길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하라는 것인지 하지 말자는 것인지를 명쾌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중국의 눈치를 보고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안보관이다. 지도자로서의 단호함과 결단력이 부족함을 보게 된다. 개헌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지향점을 찾는 문제도 너무나 이해 타산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유력한 후보자일수록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마치 따 놓은 당상을 왜 내가 포기 하느냐는 식이다. 이미 개헌을 의견을 모은 3당은 차기 대통령 임기 3년에 못을 박고 이를 토대로 개헌협상을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인 실현 가능한지를 놓고 볼 때도 여러 가지 의문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미래 동력과 정치권력을 지형을 바꾸는 일에 정략적 셈법이 도사리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개헌이 이뤄질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제로 바꾸어나가자는 대원칙 앞에 실행과 실천의 구체적 의지가 결여된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이 의혹의 눈초리도 매섭다. 개헌을 한다는 것인지 하지 않는 다는 것인지 마치 샤드배치에 따른 분열상을 똑같이 보게 된다.
대통령탄핵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 앞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고통스런 대립과 반목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행태는 준법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른바 맹종이 보여주는 부작용과 아픔도 겪고 있다. 애국애민의 지도자 상이 무척이나 절실한 대한민국의 현주소이자 자화상이다. 지금 등장하는 장미대선의 후보자들의 면면과 주장논리를 보면 과연 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재목인지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생명력 없는 난국 타개해법에다 지지율마저 시원찮은 정치인물들이 역사적인 사건을 이끌고 있는 국민들 앞에서 한마디로 재롱을 떨고 있는 꼴이다. 얼굴을 알리고자 하는 일부 들러리 인사들은 역겨울 정도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자신을 알라!”이다. 물론 예비경선을 거쳐 걸러진다고는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식상함에 한숨이 절로 난다. 대한민국에는 왜 이렇게 믿음직한 지도자의 기근 현상이 심할까 국민들의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군계일학처럼 후보군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인물들의 부각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게 누구인지는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일이지만 말이다. 함량미달인 인물들이 가시 돋친 언행과 독설, 적대적 언행으로 국민들을 유혹하려고 하지만 이는 착각 중에 착각이다. 미증유(未曾有)의 탄핵이 가져온 대한민국의 불행한 작금의 일들로 인해 국민들의 검증의식은 그 어느 때보다 준엄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젊은이들도 벼르고 있는 중이다. 잠룡도 아닌 미꾸라지가 너무나 설치고 온 방죽이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 후보자들 가운데는 벌써 기 싸움도 치열하다. 실업률이 9.5%니 12.3%니 하면서 지나간 통계수치가지고도 논쟁을 벌이는 해프닝도 보았다. 대한민국의 가장 고통스럽고 중요한 현안 중에 하나인 청년실업률과 청년실업자들의 데이터하나 제대로 갖고 있지 않다면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모든 데이터는 이미 다 나와 있다. 통계청 자료뿐만 아니라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소상하게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실상이 소개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바르게 정리해서 일관성 있는 수치를 적용하여 국민들의 혼란을 줄여주길 바란다. 왜냐하면 언행의 신뢰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면 ‘모른다!’ 아니면 공부를 해서 토론에 임하길 바라며 행여 말실수로 화를 자초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른바 노인폄하 발언이나 여성비하 등의 발언 등이다. 과거 이런 사례가 지금도 반면교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명 대선공약과 정견들이 바르게 국민 앞에 투영되는 장미대선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된다는 인물들이 일반 국민들의 생각이나 수준조차 따라오지 못하는 정도가 되어서는 정말 안 된다. 모름지기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통치자의 길은 이른바 투철한 통치철학과 국민을 위한 따뜻한 가슴정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막강한 권력욕과 사리사욕에만 집착하여 어리석은 행보를 보인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불행이다. 다시는 대한민국에 탄핵으로 물러가는 대통령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불행이자 아픔이며 지도자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비극의 지도자였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장미대선의 이름에 걸 맞는 위대한 지도자와 아름다운 대한민국건설의 장미꽃이 활짝 피는 선거가 반드시 이뤄져야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그동안 외쳐온 국민주권주의이며 난국을 헤쳐 나가는 위대한 대한민국국민의 자긍심을 되찾는 길이다. 올 5월의 장미는 그래서 눈부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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