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완석 한남대 대학원 공연예술학과 겸임교수

대전에 주목할 만한 영화이론가와 평론가가 탄생했다. 김대중! 그는 작년 초 한양대학교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대전 토박이이다. 그가 작년 5월에 영화 관련 도서를 출간했다. 제목은 『임권택 영화』이다. 이 책은 김대중의 한양대학교 대학원 영화학 박사학위 논문인 「임권택 영화의 역사 형상화 연구 – 발터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을 중심으로」(2016)를 바탕으로 저술된 것으로, 임권택의 102편에 달하는 필모그래피 중에서 1970년대 말 이후 만들어진 20편의 작품을 고르고,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9편의 작품을 대상으로 예술적 범주에서 이론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임권택 감독은 1962년 영화 연출을 시작한 이래 60년대에는 지방 흥행업자들의 영향 하에서 상업적 특징이 두드러진 작품을 만들었고, 70년대 들어 유신정권의 정치적 압력으로 국가 정책에 부응한 영화와 제작자의 외화 수입 쿼터 획득을 위한 작품을 연출했다. 그러던 그가 1970년대 말 <족보>, <깃발 없는 기수>, <신궁> 등의 작품을 시작으로 80년대 <짝코>, <만다라>, <불의 딸>, <길소뜸>, <씨받이>, <티켓>, <아다다>, <아제아제바라아제>, 90년대 <개벽>,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2000년대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천년학>, 2010년대 <달빛 길어올리기> 등 한국의 근현대사와 근대 이전의 전통을 진지하게 성찰한 영화를 만들었다.

임권택의 이들 작품은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고자 하는 감독 스스로의 각성을 계기로 한 것이며, 해외의 유수한 영화제로부터 초청되거나 수상함으로써 ‘예술 영화’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그간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임권택을 연구하고자 하는 노력과 시도가 있었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예술적으로 포괄하는 작업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이에 본 논문은 역사적 관점을 바탕으로 이들 임권택의 영화를 예술적 논의의 장에서 이론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이는 작가주의적 관점에 의한 접근이 임권택의 영화 연출 이력이 지니는 불균질성과 불연속성으로 인해 지니게 되는 난점을 ‘예술 영화(art cinema)’의 방법을 통해 고찰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은 예술적 이론의 장에서 임권택의 일련의 영화가 지니는 역사적 특징을 분석하는 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초기 주저작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1928)의 핵심적 방법론인 알레고리론이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비애’, ‘파편’, ‘부활’, ‘원천’ 등의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의 핵심 개념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역사를 기억하는 플래시백, 구도와 예술적 가치의 추구가 지니는 구원과 영원성, 근대적 상황에서 단절된 것으로 인식되었던 전통의 복원과 재인식의 문제 등 임권택의 영화가 지니는 역사 형상화적 특징을 고찰하였다.

책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제1장은 임권택 영화의 역사 형상화적 특징을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제2장은 <길소뜸>(1985)을 중심으로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산가족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제3장은 <티켓>(1986)을 중심으로 근대적 상황 속 인간의 비애를 고찰했고, 제4장은 <아다다>(1987)를 중심으로 근대화 속의 비애적 여성에 대해 논의를 전개했다. 위의 세 영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임권택의 영화가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 파편화된 과거의 문제를 비애의 관점에서 형상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5장은 <개벽>(1991)을 통해 구원과 부활의 역사 인식을 고찰했으며, 제6장은 <취화선>(2002)을 중심으로 초월을 위한 결정적 장면들을 분석했다. 이 두 장을 통해 비애적 역사 속에서도 구도와 예술의 가치를 위해 정진한 인물의 삶을 구원과 부활의 관점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논했다.

제7장은 <서편제>(1993)를 중심으로 근대와 전통의 갈등 문제를 살펴보았다. 제8장은 <족보>(1978)를 중심으로 전통의 복원과 재현에 관해 고찰했으며, 제9장은 <만다라>(1981)를 중심으로 종교 전통의 구도적 가치와 현실의 조명에 대해 논의를 전개했다. 마지막으로 제10장에서는 <춘향뎐>(2000)을 중심으로 전통 예술의 영화적 활용 문제를 고찰했다. 제7에서 제10장은 임권택 영화가 지니는 전통의 복원과 재현 문제를 한국 문화의 원천 차원에서 논한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그간 임권택의 영화를 ‘한국적’이라는 용어를 통해 국가 혹은 민족의 범위 에서 서양의 영화와 차별화되는 양상에 집중한 국내외의 기존 연구와 달리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면모에 주목함으로써 그의 영화가 지니는 역사 성찰적 특징을 논구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영화’적 접근은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기 언어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임권택 감독 개인뿐만 아니라 근대적 상황 속에서 타자적으로 살아온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이 임권택 영화의 모든 것을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을 통해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임권택 영화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은 현재 대전대성고등학교 교목실장으로 재직 중에 있으면서 대전 예술평론가 그룹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전예술》등에 영화평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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