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구 대전·충남 지방병무청 징병검사과장

해외에 파병할 무관을 대상으로 <병무행정설명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행사시간은 2시간여 남짓이지만, 준비 작업은 꽤 오래 걸리는 업무이다. 행사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행사내용과 안내문 작성, 파견지별 요청자료 검토 등 세심하고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렇듯 신경이 많이 쓰이는 행사지만, 나는 나만의 비밀스런 즐거움이 있어 이 행사를 설렘으로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교들의 거수경례 장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렁찬 구호와 함께 각 잡힌 제복차림의 거수경례 장면을 보면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본 듯 온몸에 전율이 인다. 이국의 여행지에서도 제복차림의 군인들을 만나면 무조건 반갑다. 제복은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자기희생을 상징한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싶다.

가리발디 동상이 있는 로마의 자니꼴로 언덕을 가 본 적이 있다. 자니꼴로 언덕에는 가리발디 장군이 말을 타고 로마시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동상 아래 적힌 인상적인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

가리발디는 고대 로마제국 붕괴 후, 조각난 도시국가의 형태로 강대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탈리아 반도를 하나의 로마로 통일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 군사적 승리 대부분이 가리발디의 공이었다고 하고, 미국의 링컨대통령은 그를 북부의 수장으로 와줄 것을 제안했다고 하니 그의 명성과 용맹함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특히 천여 명의 “붉은 셔츠부대”라는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점령함으로써 그는 당시 이탈리아 반도인들의 엄청난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이후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국왕이 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이 정복한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비토리오 엠마뉴엘레 2세에게 넘기고 자신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린다.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을 바치고 통일 후에는 사심 없이 권좌를 떠나 카프레라라는 작은 섬에서 낚시와 사회사업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야망과 욕심을 기꺼이 내려놓아야 한다는 판단은 당시 강대국의 압제에서 힘들게 살던 민족을 구해야겠다는 사명감, 그의 군인다운 기개와 충성심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욕망 따위에 휘둘려 대의를 져버리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다시한번 그의 생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비록 권좌엔 오르지 못했지만, 가리발디는 전 이탈리아 역사를 통틀어 시저와 함께 이탈리아 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높은 권좌에 오른 인물 보다 애국심과 겸손함으로 많은 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낸 인물이 오래 오래 사랑받는다.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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