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화합·대혁신·정권재창출의 적임자 될 터”

[대전투데이= 이정복 기자]

◆ 3선개헌 반대 투쟁에 나선 고등학생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은 1951년 ‘가고파’의 고장 마산 완월동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올라와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부터 정치 사회적인 관심이 많았던 소년 이주영은 고3시절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원칙이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년시절의 열망을 안고 서울대 법학과로 진학했고,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지방법원을 시작으로 판사의 길을 걸었다.

1995년 2월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고향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 정책위의장만 2번 역임한, 새누리당의 대표 정책통

2000년 4월, 이주영 의원은 16대 총선에서 창원(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드디어 이주영 의원의 정치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4년 뒤인 2004년에는 권영길 후보와의 재대결 끝에 낙선하고 말았다. 하지만 국민의 선택은 이주영 의원을 다시 살려냈다.

2006년 7월 고향인 마산갑(합포)에 보궐선거가 발생하자, 지역구를 옮겨 당선되었다. 이로써 재선의원이 된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던 2007년 5월에는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전국 순회 “정책비전대회”를 기획했다.

동시에 정당 사상 첫 “후보 검증 청문회”를 관철시켜,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어냈다.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일류국가 희망공동체 대한민국”이라는 정책 공약집을 단행본으로 만들어 시중 서점에 판매하면서 참신한 방법으로 정책 매니페스토를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18대 총선에서는 72%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3선 의원이 되었다.


◆정권 심장부를 겨눈 저격수

야당의원 시절, 이주영은 집권 세력의 권력형 비리를 파헤친 ‘저격수’였다.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과 관련된 사설 펀드에 권력실세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정현준 게이트’를 비롯하여, 주가조작으로 권력형 비리의 결정판이라 불린 ‘이용호 게이트’, 특검이 실시되어 대북 비밀 송금의 실체가 드러난 ‘대북비밀송금게이트’, 그리고 대통령 일가 부정재산축적사건 등등 정권 심장부를 겨눈 공격의 전면에는 이주영 의원이 있었다.

이러한 두려움 없는 활동으로 그는 조직폭력집단으로부터 협박편지를 받기도 했고, 2000년 11월 당시 집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의원 117명의 이름으로 ‘제명’을 요청하는 징계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전관예우 금지의 칼을 뺀, 개혁가

이주영 의원은 3선 의원이 된 후 정책역량 강화에 더욱 매진했다.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을 맡아 전관예우금지를 명문화했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에 당선되었습니다. 2007년 정책위의장을 역임한데 이어, 사실상 두 번째로 집권여당의 정책 사령탑을 맡게 된 것이다.

이 때 이 의원은 감세정책의 중단,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 획기적 복지 정책, 반값 등록금 등 청년 정책, 공공부분 비정규직 해소 정책, 사회안전망 확대 등 당 정강 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이끌었다.

이렇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구상들은 19대 총선 승리의 기초가 되었다.


◆몸을 던져 국민의 신뢰를 받았던 해양수산부 장관

2012년 마산 합포구민의 압도적 지지로 4선 국회의원이 된 이 의원에게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대선기획단장’이란 중책을 맡긴다.

2014년 3월 제17대 해양수산부장관에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울분과 분노가 극에 달한 유가족들 사이에서 공직자들은 쉴 새 없이 멱살을 잡혔다.

당시 이주영 장관은 사건 발생 당일 현장에 내려간 이후 139일간 단 한 번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간이침대에서 쪽 잠을 자며 매일같이 팽목항을 돌아봤다.

옷을 들고 내려온 아내조차 만나지 않았을 정도로 사고수습에 온 힘을 다한 이주영 장관, 그 모습에 희생자 가족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위기 앞에서 몸을 던져 국민의 마음을 얻었던 것이다.


<인터뷰> 이주영 의원

▲이주영 의원의 장점은 무엇인지?

이주영은 계파에 의존한 정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후보 대선기획단장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지만,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는 논쟁에 끼지 않았습니다.

계파질서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대통령 임기 후반부의 청와대와 당의 소통을 무리 없이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 이주영입니다.

새누리당은 지금 강력한 혁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주영은 2번이나 집권여당의 정책 사령탑을 역임한 당의 대표적 정책통입니다. 국민 앞에 강력하고 새로운 정책을 보여 줄 적임자입니다.

이주영은 16년간의 정치 활동 중에 한 번도 비리에 연루되지 않고, 정직하고 깨끗한 의정 활동을 해왔습니다. 항상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많은 시민단체로부터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정치인의 덕목은 정직과 신뢰, 그리고 깨끗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몸으로 보여준 사람입니다. 어떤 혁신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칠고 험한 길일수록 노련한 탐험가가 필요합니다. 이주영은 판사출신 5선 의원이자 前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입법, 행정, 사법의 전 분야를 두루 거쳤습니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정책비전대회·후보검증청문회의 주역이었으며, 2012년 대선에는 대선기획단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축적된 경륜으로 새누리당이 처한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 하고 보수정권재창출을 가능케 할 역량과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주영 의원 프로필

○ 前 해양수산부 장관. 제16·17·18·19·20대 국회의원(5선. 경남 창원 마산합포)
○ 1951.9.30. 경남 마산 출생
○ 학력: •서울 중앙중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

○ 주요 경력
•제20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10기)
•서울민사․형사․가정․동부․북부, 청주지방법원 판사
•영국 런던대 유학 파견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한나라당 인권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 부의장
•경상남도 정무부지사
•한나라당 수석정책조정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최고위원)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중앙선대위 정책상황실장
•한나라당 경남도당 위원장
•국회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
•국회 아동청소년미래포럼 공동대표
•국회UN-MDGs(새천년개발목표)포럼 공동대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비상대책위원)
•국회 스카우트 의원연맹 회장(현)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CPE) 회장
•새누리당 박근혜대통령 대선기획단장, 특보단장
•한·칠레 의원친선협회 회장
•아시아태평양환경및개발의원협의회(APPCED) 회장(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 원장
•국회 아프리카 새시대 포럼 회장(현)
•K-BoB Security Forum 공동대표(현)
•해양수산부 장관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저출산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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