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투데이
기획특집교단에세이
첫눈 오던 날충남도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11.30  14:10:5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첫눈이 함박눈으로 왔다. 그날은 외부행사로 부안에서 내소사를 거쳐 올라오던 길이었다. 마음 준비도 안됐는데 순식간에 은빛세상이 돼버렸다. 첫눈이 그렇게 와서는 안 되는데. 가을이 미처 떠나기도 전에 겨울을 알리는 고지서처럼 첫눈은 그렇게 배달되었다. 그 날은 민주화의 큰 산이자 개혁정치의 큰 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배웅길이기도 했다. 버스 안 모니터에서는 영결식 중계방송이 음악처럼 흘렀다. 알싸하던 가을은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

거북이걸음 운전으로 어렵사리 퇴근을 했다. 약속은 없었지만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어야만 될 것 같은 날. 누군가를 만나야만 할 것 같아 서성거렸다.‘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던 시 구절이 생각났다. 첫눈이 온다. 누가 온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큰 축복이다. 신록처럼 젊은 날. 첫눈이 내릴 때 만나자던 약속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첫눈이 내린다는 절기인 소설(小雪)에 가을비가 소곤소곤 내렸다. 다음날 새벽 서울에서 진눈깨비로 첫눈이 확인됐다는 뉴스를 출근길에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첫눈은 보통 시늉만 하는 정도였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이 내린 첫눈은 없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첫 순정, 첫사랑 그리움이 일 년을 달려 첫눈이 되는 거라고. 고백 못한 사랑들이 눈 편지되어 날아드는 거라고. 고백 못한 사랑, 얼마나 많은 그리움들이 하늘로 올라가 첫눈이 되어 내린 것일까. 그 첫눈으로 가슴을 문지르면 내 숨겨놓은 그리움도 좀 숨 막히지 않을 수 있을까.

첫눈을 생각한다.‘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던 김용택 시인의‘첫눈’이 떠오른다. 보고 싶은 이들의 이름이 하얀 눈에 발자국 나듯 점점이 이어진다. 묘한 기대와 그리움. 달달한 첫사랑의 추억. 짜릿한 고백으로 가슴은 한없이 바운스 바운스. 그 시절은 온데간데없다. 미끄러운 출퇴근길만 남아 있다.

묘하게도 이정석에‘첫눈이 온다구요’노랫말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트로트 가사만이 입안에서 돌고 돈다.‘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까닭 없이 절절하다.

한동안 화려한 단풍으로 눈이, 가슴이 호사를 누렸다. 이제는 다 내려놓았다. 미련과 집착, 욕심으로 허우적대지만 모든 걸 비워버린 자연의 몸에서 또 배운다. 책상에 아직 못 다본 몇 권의 책. 바람을 몰고 온 흔적들. 퇴근길에 바라다 본 휑한 들판의 여운이 남아 길어지는 밤을 더욱 짧게 만들고 있다. 또 하나의 연륜이 늘어난다는 고민이 깊어진다.

열병의 흔적처럼 오톨오톨하던 마음의 내벽위에도 하얗게 첫눈이 내렸다. 산다는 건 첫눈 같은 환의인지도 모른다. 매일 매일이 우주에서의 만남이고 첫 입맞춤이기 때문이다. 하얀 눈꽃. 은빛세상. 첫눈은 그저 올해의 끝자락을 향해 질주하는 계절의 바로미터만은 아니다. ‘손톱 끝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뤄진다’는 그 말을 오롯이 믿을 수 있는 삶으로 잠시나마 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근심으로 삶을 받들어도 하얀 눈의 평화처럼......


대전투데이, DAEJEONTODAY

< 저작권자 © 대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이정복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1
코로나19 시대의 가치관
2
‘유성복합터미널 건립사업’ 또 좌초 … 애물단지 전락
3
세종시 6-4 해밀마을 ‘세종 마스터힐수’ 친환경 도시 새로운 주거중심 ‘우뚝‘
4
천안사랑카드, 내년부터 삼성·LG페이서도 사용
5
논산시 윤천수 국장 ·김용신 과장 ,, 발로뛰는 행정 ‘귀감’
6
공주대, 교육혁신 포럼 개최
7
보령시, 대한민국소비자대상 2년 연속 글로벌베스트행정부문 수상
8
환경부, 담뱃잎 찌꺼기 발암 위험성 알고도 유통 허용
9
대전도시철도, AI로 고객안전 지키고, 경영효율 높인다
10
당진시의회, 제76회 임시회 개회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고충처리인
대전광역시 유성구 유성대로 26-20 태동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538-3030  |  팩스 : 042-538-221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구
업체명 : 대전투데이  |  사업자번호 : 314-81-93275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대전 가 00017  |  대표자명 : 김현정  |  발행인 : 김현정  
Copyright © 2011 대전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jtoday@dj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