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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간다는 것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과장 신경희
이정복  |  conq-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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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7  15: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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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칫멈칫 다하지 못한 사연 푸른 하늘 등에 업고 할랑할랑 피었습니다. 하늘을 마시고 달을 삼킨 향기. 당신은 피해갈 수 없는 아득한 전생 나의 운명. 시월 날마다

그리운 추억의 초원 이슬방울 문채로 흔들립니다.’ 지난해 페이스 북에 사진과 함께 올렸던 ‘구절초 연가’ 습작 시(?)다. 가을비 한차례 다녀가더니 더욱 또렷해진 단풍은 사람들을 물들인다. 붉게 물들여보지도 못한 삶이 쓸쓸하게 저물어 간다. 허전하고 쓸쓸하여 찻물을 올려놓고 먼 산 바라기를 한다. 이 가을 잘 견디고 있느냐고 구절초 꽃잎에 부치지도 못할 마음의 엽서를 누군가에게 다시 쓴다.

시월 중순쯤이면 하는 일이 있다. 곶감 켜기와 국화차 만들기다. 그런데 무슨 연유였는지 두어 년 그 일을 거른 채 보냈다. 십여 년 전에 심은 월하 아기 감나무가 친정집 대나무 밭 크기를 훌쩍 넘겨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지가 얼추 이삼년은 됐다. 올해는 둥글고 환한 감을 최고로 많이 매달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보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지난주 남편과 아들이 달려 들어 감을 따 주고, 친정엄마와 나는 딱딱한 것으로만 골라서 열심히 깎았다. 둥글게 둥글게 잘깍여진 감들을 이어 놓으니 그 이상 아름다운 꽃이 없다. 지금 그 꽃들은 달콤한 곶감으로 변신중이다.

친정집 담벼락에 수줍게 피어난 달걀노른자 같은 국화꽃잎을 따서 국화차를 만들었다. 해마다 서툴게 차를 만들면서 느끼는 것은, 차와 하나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 시설이 있다면 더욱 좋은 차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형편대로 소박하게 할 뿐이다. 꽃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향을 즐긴 후, 꽃잎을 딴다. 그 꽃잎들을 뜨거운 수증기로 쪄낸다. 그런 다음에, 서늘한 그늘에서 말리기만 하면 국화차가 완성된다. 그렇게 만든 꽃잎에 어느 날 뜨거운 물을 부으면 국화향이 얼굴을 어루만지듯 스치며 꽃잎 딸 때 제 모습으로 다시 새록새록 피어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봄이면 감잎차 뽕잎차를, 가을이면 으레 국화차를 만들곤 했다. 그윽하게 우려 마시면서 한 단계 더 높은 삶을 살고자 하는 야무진 꿈을 꿨었다. 차를 마시면 은근한 향이 입안에 감돈다. 그렇듯이 내 인생도 그렇게 여운이 오래 남는 향긋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서툴게 만드는 차지만 차를 만드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차 만드는 일은 정성이다. 고운 잎 따서 수증기로 찌는 일, 갈무리할 때는 건조하게, 끓일 때에는 청결하게 해야 한다. 정성스럽고, 잘 말려 습하지 않게, 청결하게 하면 다도(茶道)는 다한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 일게다. 삶의 경영이 결코 녹록하지 않을지라도 담담히 나아가는 것이 다도(茶道)처럼 인생을 살아내는 맛이 아닐까.

뜨거운 물만 부으면 달금한 국화향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깊고 푸른 이 좋은 날들.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이제 조용히 차가 지닌 성품대로 차를 즐기는 일만 남지 않았는가. 까만 어둠에 덮인 밤하늘 은하의 별들이 두런두런 가을을 어루만지고 달무리에 갇혀버린 달이 어둠을 밀어내는 밤. 듬벙 듬벙 그렇게 가을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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