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희

부모는 천륜이라지만 요즘처럼 각박하고 살기 힘들어진 시대에 종종 뉴스에 보도되는 바와 같이 패륜도 서슴치 않는 현실에서 효심 깊은 제 동생 전영광(37세·남)을 칭찬하고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난 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컸습니다. 살림이 그리 넉넉하지 않고 형제가 많았던 터라 동생은 대학을 가지 못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직장생활을 하다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5년 전 대전 충남대병원에서 위암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살고있던 동생은 아버지를 서울로 모시고자 했지만 부모님도 대전에 계셨고 4형제 모두 대전에서 살고 있던 터라 간병 등 여러 가지 대전에서 하시는게 낫다고 판단하여 수술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후 관리를 잘 해오시다 2013년 7월에 다시 재발하시어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형제들이 많은 대전에서 수술을 해야하나 하고 고심하던 차에, 서울에 사는 동생이 의견을 내었습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2차 암수술이고 또 아버지께서 연로하시니 서울로 모시자는 예기였습니다. 다들 생각은 같은데, 평소 많이 편찮으신 어머니께서 간병 하시는 것도 무리고 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 동생이 다 알아서 하겠다며 선 듯 나서서 서울 아산병원에 예약도 잡아놓고 일사천리로 진행하여 아버지의 수술을 빨리 앞당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또 수술을 해?”하고 내심 걱정이 되셨는지 그새 살도 많이 여의시고 잠도 못 주무시며 수술을 거부 하셨지만, 여러 형제들과 동생이 내려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드려서 동생이 서울로 모시고 가서 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병원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거동을 못하시는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자리를 한시도 떠나지 않고 간호를 하는데 식사도 잘 못하고 잠도 잘 못 자게 되니 동생 건강에 걱정되어 어머니와 형제들은 동생을 위해 형편에 무리가 되지만, 간병인을 두기로 합의하여 간병인을 두었으나, 동생은 이를 반대하며 간병인에게 맡기면 아버지께서 불편해 하신다며, 아버지 곁을 지키며 간호하는 지극정성의 효심에 우리 형제들은 고마움을 넘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쉬지도 않고 계속 아버지의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닦아드렸으며, 거동하시게 될 때부터는 씻겨드리고 식사(죽)를 하셔야 기운을 차리실 수 있다면서 식사 끝까지 지켜 드리는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신체적 기능이 떨어져 대, 소변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는 대변을 손으로 파내어 조금이라도 배변을 보시게 하였던 동생이 너무 고맙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동생이 많이 지치고 너무 힘들어 보여서 집에 가서 잠깐이라도 쉬고 오라하여도 극구 사양하며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생에 대하여 의사선생님(아산병원 암센터 전문의 유문원 교수님)께서도 여러번 효자 아들 두셨다고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동생이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직장도 그만 두었을 때도 우리 올케역시 아무런 불만 없이 허락하고 병원에서 식사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영양을 보충하셔야 한다며 집에서 손수 직접 죽 종류를 바꿔가며 공양하는 동생내외의 모습을 보며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러워서 십시일반으로 작은 돈이나마 생활비에 보탬이 되도록 형제들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아산병원에서 퇴원하실 무렵 동생에게 어느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라고 연락이 왔는데도 아직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이 않 되셨다고 취직을 미루기도 하였습니다.

퇴원 후에도 회복이 않 되고 염증도 심하시고 힘들어 하셔서 집으로 모시지 않고 다시 집근처 서울 송파구 청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집보다 병원이 더 안심이 되고 응급 시 조치를 빨리 취 할 수 있기에 대전으로 모시기엔 무리이고 동생 집으로 모시기엔 집도 좁고 열악해서 부득이 병원에 다시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동생은 아버지에 대하여 변함없는 병간호를 하는 모습을 보고 같이 입원해 계시는 환자분(문은수)이 하신말씀이 “요즘 보기 드문 효자라며 부자간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여서 사진에 담아두고 싶다”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또 다른 분은 아버지와 동생이 운동하러 나가신 사이“ 저 집 아들 하는 거 봐라”하시며 환자분(강권식) 아들을 꾸짖었다고 간병인(강정화)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퇴원 하실 때도 아버지께서 매번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미리 준비해 두셨지만, 오빠가 “동생은 직장도 그만두고 생활하기도 힘들 테니 남은 형제들끼리 병원비를 준비하자”고 했는데 동생이 어느새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지불하였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부모님이니 당연하다고 생각 할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장이 부모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을 전직으로 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취직은 때가 있는데, 그때시기를 놓쳐서 지금도 취직이 않 되어 고생하는 동생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아파옵니다.

다행히 동생의 지극정성으로 아버지께서 빨리 회복하시고 일상 생활하시는걸 보면 고생하셨던 아버지와 동생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런 글을 써 본적이 없는 제가 동생의 효심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칭찬과 자랑을 하고자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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