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논설고문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조상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도 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말 속에 뼈가 있겠는가 하지만 기실 예사로운 말에 단단한 속뜻이 있다는 말로서 의미심장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은 글자 그대로는 말의 길이 끊어졌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것을 일컫는다. 개소리라는 비속어도 있다. 이는 조리 없고 당치않을 말을 표현하는 비속어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은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묘하게 꾸미는 말과 은근한 얼굴표정을 가짜로 짓는 것을 말한다. 감언이설(甘言利說)은 귀가 솔깃하도록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는 견강부회(牽强附會)도 있다. 삼촌지설 강어백만(三寸之舌, 彊於百萬)은 ’세치 혀가 백만대군 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세 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다"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고, 말 한 마디도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어린아이들이 말을 부모로부터 배울 때도 좋은 말 아름다운 생각을 표현하도록 언어훈련을 하게 된다. 욕을 하게 되면 꾸중을 하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쓰도록 하는 이유는 바로 사회생활에 있어 말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득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실제 어린이 집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전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말과 글은 아주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 세계 언어는 줄잡아 2천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고유한 말과 글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태어나서부터 자신들만의 말을 배우고 살아간다. 글을 몰라도 말을 하고 사는 민족들이 소개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무엇보다도 언어 즉 말과 글은 인간의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필수불가결한 삶의 요소임이 분명하다. 매일 일상에서 말과 글을 사용하고 살아가지만 말 한마디 잘못해서 다툼이 일어나고 살인을 하고 사회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의 말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주 다른 차이를 불러오게 된다. 말을 잘못해서 잡혀가던 시절도 있었고 말을 감시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조심 입조심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이다.
요즘 정세균총리가 코로나 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신촌의 상인을 위로하기 위하여 만난 자리에서 “손님이 적어 편하시겠네요!”라고 한 농담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정총리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어려움을 겪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농담 삼아 했다는 말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생업조차 위협을 받는 위급한 처지에 놓인 소상공인들에게 던진 농담치고는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총리도 악의적인 마음을 갖고 던진 발언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번 잘못 던진 말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야당들의 비난 공격은 그야말로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SNS에서도 비난 글이 넘치고 있다. 요즘 장사가 되지 않아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상인측은 선의가 왜곡되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격려를 받은 상인이나 직원은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는데 난데없이 매장과 총리가 구설에 오르내려 당혹스럽다고 했다. 정작 발언을 들은 당사자는 “손님이 적으니 편하시겠네요!'라는 발언의 취지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근무강도가 약해져서 편하겠다는 노동자 입장에서 한 일상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의로 던진 농담조차도 작금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과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를 보면 사회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이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파장을 일으켰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해찬 대표와 박인숙국회의원의 정신장애인 비하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장애인단체와 정신장애인가족단체들이 성토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요즘 기독교계의 신성모독 발언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해 10월 청와대 앞 집회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목사가 던진 발언이다. 말인 즉 “하나님 꼼짝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말이다. 일반인들이 들어도 섬뜩한 말을 목회자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모두가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개신교 대형 교단들이 포함된 단체 '8개 교단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 협의회'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발언한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에 대해 "한국 교회의 신뢰와 전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비신앙적이라는 것이다. 개신교계에서 거센 비판이 이어지자 전 목사는 지난 1월 30일 열린 한기총 총회에서 "당시 성령이 충만했다"라면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 맞다"라고 인정했다. 기독계에서는 과연 이런 궤변이 있을 수 있느냐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고무신도 짚신이 있다”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으로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 짓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고 무슨 변명을 하더라고 이는 공감과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발언이 되고 있다. 좋지 않은 발언 역사의 한자리를 분명히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 정동영의원이 던진 “노인은 투표 말고 쉬세요”라는 노인폄하발언도 그 파장이 오래갔다. 발언 당사자도 곤욕을 치렀다. 지금까지도 정치적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거론되는 모든 것은 검색을 치면 그대로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무 말이나 던진다고 다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어불성설(語不成說) 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한 것이다. 즉 “고무신도 짝이 있다”를 “고무신도 짚신이 있다”라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궤변(詭辯)과 같은 것이다.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어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적인 변론이다. 그래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라는 말이 생겼다. 말이나 글이나 마찬가지이다. SNS에 글을 잘못 올리면 그 파장이 엄청나다. 캡처를 해서 삽시간에 퍼진다. 댓글조작도 마찬가지이다. 진실을 포장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여론을 호도하려는 악의적인 시도이다. 그래서 이를 법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언어폭력도 매우 크다. 성추행도 언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여성들에게 잘못 던지 농담조의 말 한마디가 이른바 “미투’라는 이름으로 개망신을 자초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시대이다.

과거 아나운서가 인기 프로그램에 나와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있는 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를 갖는 논어에 나오는 ‘요산요수(樂山樂水)’를 ‘낙산낙수’로 말하다가 망신을 당하고 그 뒤부터는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다. 좋아할 ‘요’를 즐길 ‘락’으로 풀이한 때문이다. 이처럼 작금의 사태를 보면 말이나 글이나 언어표현을 극히 정제되어야 함을 보게 된다. 특히 사회지도층의 언어는 더 더욱 그렇다. 말을 잘한다고 자랑하지 말고 글을 잘 쓴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언제나 세치 혀를 잘못 사용하면 수십 년을 쌓은 명성을 일순간에 날리고 패가망신을 당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말과 글은 자칫 화를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희대의 망발은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이건 언어학자이건 그 누구건 나왔으면 좋겠다. 교만과 오만을 넘어 까칠한 망발(妄發)로 국민은 물론 신자들조차 경악케하는 목회자의 그릇된 허상의 발언은 그 무엇을 추구한다하더라도 이미 정도가 아니며 “정말 아니올시다!”라는 중론이다. ‘망발’이 어떻게 ‘성령’일 수 있는가 독실한 신자들은 묻고 있다. ‘요산요수’를 ‘낙산낙수’라고 주장하는 궤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은 곧 인격이고 품격이고 삶의 발자취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이 던진 말은 책임을 져야 한다. 얼렁뚱땅 넘겨서도 안 된다. 비겁함을 보이지 말고 말이다. 특히 지도층들은 말과 글을 우습게 알지 말아야 한다. 분명 바로 알아야 한다. 자칫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엄청난 것이다. 정말 “말과 글 바로 알고 삽시다!”라는 범국민적 캠페인이 절실한 시점인 것 같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세치의 혀’를 다시금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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