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태 논설고문

요즘 출판기념회가 전국 곳곳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다름 아닌 책(冊)을 출간하여 이를 기념하는 자축(自祝)행사이기도 하다. 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작가의 정신세계와 영혼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책에 담고 있는 함축의미들이 그러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자서전의 경우는 작가의 삶의 역정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자고이래(自古以來)로부터 매우 중요한 기록물로서도 그 가치가 엄청나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책에 기록된 의술과 수학, 과학 등 엄청난 지식들이 유럽과 아시아 등 곳곳에 전파되어 세계문명을 변화시키며 인류 역사를 형성하여 왔을 정도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나라로도 세계사적 가치와 자부심이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 청주목(淸州牧)에 있었던 사찰 흥덕사(興德寺)에서 만들어진 인쇄물로 정확한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세간에서는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직지심체요절은 공식적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의 승려 백운 화상이 중국에서 가져온 요절을 재구성하여 엮은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본은 1372년 제작이 시작되어 1377년에 간행되었다. 이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간행한 금속활자본 성경보다 78년 더 앞서니까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루어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인류에게 남아있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이 직지(直指)이다. 직지(直指)는 금속활자, 목판, 인쇄본(상하권), 필사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속활자는 복원판이 청주고(古)인쇄박물관에 있고, 목판도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있다. 인쇄본 중 상권은 행방불명이고 하권은 프랑스의 국립도서관 특별전시실에 있는데 구한말 프랑스에 약탈당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책(冊)의 사전적의미를 살펴보면 종이를 여러 장 묶어 맨 물건이나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다. 한 인간의 내면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에는 소설도 있고 시집, 수필, 자서전, 잡지, 심지어 교과서나 참고서도 있다. 과거에는 자주 쓰던 용어 중에 하나는 조잡하고 흥미위주의 소설책을 3류 소설책이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3류 소설도 음성적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책도 있었다. 분명히 책은 책이고 작가도 있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내놓아라하는 베스트셀러작가들이 존재한다. 책을 읽는 습관이나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요즘 같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너무나 중요하다. 요즘은 그래서 전자책도 나와 있다. 이른바 e-북이라 한다. 이런 저런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런데 선거철만 다가오면 이곳저곳에서 출판기념회가 우후죽순처럼 열린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다. 요즘은 오는 4월 15일 21대 총선을 겨냥한 출판기념회이다. 언제 썼는지 모르는 책을 내놓고 엄청나게 요란한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곳을 보면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가 탄생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기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책보다는 한마디로 정치적인 세를 과시하는 현장인 것 같다. 그럴만한 정치인들이나 인물들이 총출동하여 출판기념회를 장식한다. 여기에다 책을 또 사야 하니까 생각이상의 돈들이 움직인다. 명분은 출판기념회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총선의 출정식이자 정치자금 모금 창구이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에 마쳐야 하니까 오는 1월 15일까지 마쳐야 한다. 그래서 봇물 터지듯이 예비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책을 쓰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고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 유명작가들의 출판기념회보다도 요란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를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책조차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 세간의 지적이다. 출판기념회를 연다는데 90일전까지만 하라는 공직선거법의 규제가 바로 이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동안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정치인들이라고 출판기념회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찾아보기도 힘든 출판기념회를 꼭 선거철을 앞두고 해야만 하는 가이다. 훌륭하고 좋은 책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굴도장 찍으러 등장하는 인물들의 향연이 바로 출판기념회가 된다면 이는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더욱이 책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수단이 된다면 이 또한 출판기념회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차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19대 국회, 20대 국회가 한 마디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실패작이라고 본다면 이번 총선을 그야말로 이에 대한 국민심판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가 국민 분열과 반목의 단초를 제공하고 국민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부정적인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면 이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가 바로 총선임이 분명하다. 지금 국민들은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들로부터 너무나 많이 속아왔다는 의식이 팽배하다. 바르게 다스리라는 정치가 이른바 악치가 되어 이 땅의 주인인 국민들 위에 군림한다면 이는 헌법정신에도 어긋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정치인들은 바로 이런 뜻들을 출간하는 책에 먼저 담아 바른 정치를 위한 각서와 반성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언행일치가 되어야 하며 정직해야 한다. 부정부패, 불법과 탈법, 비리, 교만과 술수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유럽의 국회의원들처럼 겸허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투철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는 참된 출판기념회가 된다면 이는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구태정치를 향한 3류 소설의 날개 짓에 불과할 것이다. 얼굴 알리는 과시의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제 새 시대 정치인들은 보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위해 눈물짓는 참된 일꾼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언행이 일치하는 기초의식의 변화도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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