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준 대전대학교 둔산한방병원 동서암센터 교수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와버그는 암에 관해 유명한 '와버그 효과'를 제창했다. 이는 암세포의 성장은 효율적인 산화적 인산화(Oxidative phosphorylation)보다 당을 분해하는 과정인 해당과정(Glycolysis)을 더 선호한다는 이론이다. 보통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이 해당과정은 암세포에서는 산소가 충분한 환경에서도 발생하게 된다. 이 이론은 최근까지도 암에 대한 주류 개념으로 자리잡으며 시대가 변할수록 이와 관련한 연구 출판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다. 어쩌면 이 이론 때문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암이 자란다는 우려가 암환자들 사이에 퍼진게 아닌가 싶다. 요즘엔 덜한 편이지만 몇년전만 해도 이 때문에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적게 드시려는 환자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2019년 2월,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 고규영 단장 연구팀은 암세포가 당이 아닌 '지방산'을 연료로 삼아 전이의 추진력을 얻는다는 결과를 발표해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 기존의 해당과정에 비해 지방산을 연료로 삼는 경로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핵심은 콜레스테롤이 대사된 담즙산(bile acid)이 암세포의 특정 신호체계를 활성화해 지방산의 산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아온 와버그 효과와는 달리, 암세포에 따라 각기 다른 대사 경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이기도 하다. 또한 연구팀은 논문에서 '암 전이 장소의 특정 영양 환경에 따라 암은 유연하게 연료를 선택하여 살아갈 수도 있다'며 개별적 특성에 따른 암의 연구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는 최근의 유전자 의학의 발전, 장내 미생물 연구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맞춤형 의학(precision medicine) 판도에 발 맞춰 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식물성이든 동물성이든 지방은 무조건 적게 먹는 것이 암 전이를 줄이는 하나의 생활법이 되는 것일까? 일단 식물성 지방은 동물성 지방에 비해 신체에 주는 이득이 많고 동물성 지방만큼 콜레스테롤 수치를 증가시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성 지방도 지방이니 먹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중성지방이 90%이상으로 구성된 중국의 캉라이터(康莱特) 주사의 효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율무(한약명:의이인)를 추출해 만든 항암 주사제인 캉라이터는 이미 미국 FDA의 3상 임상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내고 있으며, 폐암 수술 전 암환자에게 이 주사를 투여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대조군을 비교했을 때 캉라이터 주사를 맞은 환자들은 암의 괴사가 더 많이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암 수술을 하기도 전에 암 자체가 부분적으로 괴사된 것이다. 이 주사와 함께 수술을 병행한다면 결과가 더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단순히 '지방이' 또는 '당이' 암을 키운다는 생각은 그다지 권장할만한 건 아닐 것이다.

중국의 중의사로써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유명한 황황(黄煌) 교수는 '암환자에게 나는 고기든 탄수화물이든 크게 상관하지 말고 당당하게 필요한 만큼 먹으며 생활하라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검증되지 않은 상상을 적용해 먹어야 될 것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총체적 면역력의 저하라는 큰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 면역력 저하는 오히려 암이 성장하는 가능성을 크게 높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나치지 않는 것이고,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것이며 극단적인 식습관을 피하고, 다만 동물성 지방과 설탕은 줄이는 게 좋고, 고기를 먹을 때는 지방이 적은 부위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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