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독립투사이며 대한민국 공군창설의 주역 최용덕 선정
최용덕은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최익환과 어머니 태안이씨 사이에서 1898년 3남으로 태어났다. 1910년 유학을 위해 베이징으로 건너가 근대학문을 수학하고, 난위엔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6년 졸업 후 돤치루이가 창설한 참전군 제2사단에서 근무하였는데, 이러한 경험은 최용덕이 전개하는 무장투쟁에 큰 자산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 소식을 접한 최용덕은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대한독립청년단에 참여하여 베이징 일대 한인들을 규합하였다. 또한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3년 김상옥의사 의거를 위한 폭탄 확보와 운반에 조력하는 등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1924년에는 북경한교동지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앞잡이導報』를 발간하는 등 독립운동의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최용덕은 대한독립청년단에서 함께 활동하던 서왈보의 권유로 공군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육군군관학교 졸업 후 바오딩항공학교에 입학하여 비행사가 되었다. 1924년에는 우페이 군벌의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며 일제에 맞서 싸웠다. 또한 1934년 신한독립당 창당에 참여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광복군이 창설되고 최용덕은 1942년과 1943년 각각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장과 참모처장을 맡으며 한국광복군의 운영과 실무를 책임졌다. 전투기 조종사 인력을 양성하고 비행기 구입 운동을 추진하는 등 공군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이 되었다. 정부는 최용덕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