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최고기온 33도 이상을 기록한 폭염일수가 십수일을 넘었습니다. 1994년 대폭염 때보다 더 하답니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잠깐만 나가도 목젖까지 뜨거운 햇살이 들이쳐 금새 헉헉거리게 됩니다.

입추(立秋)는 가을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입추가 지났다고 해서 당장 가을이 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현실은 한동안 오히려 그야말로 찜통 같은 더위가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아직 말복(末伏)도 보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입추(立秋)가 지났으니 맹렬한 이 무더위도 서서히 잦아들겠지요.

몇 일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미세하게나마 달라지지 않았냐고 주변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출근할 때 온도를 보면, 31도 이상이었는데, 28도, 27도로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고 있습니다. 3자에서 2자만 봐도 얼마나 시원하고 반가운지. 무엇보다 공기가 달라졌어요, 습도가 낮아져 보송보송해진 겁니다. 내게로 걸어오는 풋 가을을 느낍니다.

‘입추(立秋) 날 하늘이 완전히 맑으면 대풍년이고, 비가 조금 내리는 것은 풍작의 조짐으로 길하게 여기고, 많은 비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 라는 얘기를 어느 책에선가 본 듯합니다. 올해 입추(立秋) 날엔 완전히 맑았으니 대풍년이 드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겠지요. 또한, 입추(立秋)가 지난 시점부터는 아무리 찜통 같은 무더운 날씨라도 찬 음식을 절대 삼가야 한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무더워도 속으로는 이미 가을의 음(陰) 기운이 들어오고 있기에 찬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몸에 음양의 조화가 깨지게 되어 건강이 약해지게 되어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입추(立秋) 하니까 우리가 흔히 쓰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이 덩달아 떠오르는 건 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다른데 말입니다.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다’라는 말은 <사기>에 나오는 '입추지지(立錐之地)'라는 말에서 비롯됐고, '송곳을 꽂을 만한 땅'이 없다는 뜻인데, 나이 들면서 언제부터인가 같은 발음의 단어들을 혼용(混用)하는 짓궂은 버릇이 생겨났습니다.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다'라고 쓰고, ‘입추(立秋) 지났으나 맹렬한 무더위가 한창이니 가을이 들어 설 자리가 없다’라고 읽습니다.


폭염의 8월 언덕을 오르려니 <~ 중략 ~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 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라던 오세영 시인의 ‘8월의 시(詩)’ 구절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봄이 가고, 곧 여름도 가겠지요. 가을이 우뚝 서는 입추(立秋)가 지났으니 말입니다. 흐르는 것이 물만은 아니었지 뭡니까. 나이를 먹어감에 일주일이 빨리 지나고, 또 한 달이 빨리 지나고 계절이 빨리 돌아오고 있습니다. 계절이 돌고 도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때마다 느끼는 마음은 늘 허전하고 아련하기만 합니다.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 아침의 철없는 마음이 하릴없지만 가을 향한 그리움은 마냥 깊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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