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신경희

7월의 중턱에 서니 절로 헉헉거려집니다. 장마 같지 않은 장마가 거치고 요즘 무더위가 엄습을 했습니다. 중천에는 용암이 이글거리고 시골 읍 전체가 찜질방입니다. 방송에서는 연일 기상캐스터들이 시간마다 폭염특보와 대응요령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갓 초복이 지났는데, 중복, 말복은 또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벌써부터 큰 걱정이 앞섭니다.

사무실 안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살피고 있습니다. 자주 빛 패추니아 꽃들이 기절한 듯 누워 있고, 나무들은 모든 고통을 무릅쓰는 수행자처럼 꼿꼿이 서 있습니다. 팔목의 시계는 오후 네 시를 넘어가는데 대지는 여전히 달아오르고 매미소리만 커지고 있습니다. 언 땅을 풀고 풀씨들이 고물고물 태어나기 시작해서 제비꽃이 오고, 민들레가 가고, 애기똥 풀 작은 목숨들을 지켜보며 생명이라는 위대함에 무릎을 꿇고 싶었던 그 풍경들이 어느새 지워지고, 방심하는 사이 여름은 더욱 치열하여 화분이 마르고 나뭇잎이 타들어 갑니다.

그래도 우리 집 나팔꽃들은 아침마다 꽃을 피우고, 오이는 노란 꽃을 수십 개씩 피웠습니다. 실속 없는 수꽃이 대부분이지만요. 먼 곳에서부터 호박벌이 날아왔지만 목을 뽑고 암꽃을 기다린 수꽃들은 해를 따라 지고 말았습니다. 능소화도 질세라 친정집 대문 옆에 우두커니 자리한 늙은 가죽나무에 줄기를 한껏 밀어 올라가 햇볕같이 예쁜 주홍빛 꽃잎들을 피워 올렸습니다. 해가 지면 시들어버릴 꽃들이 기를 쓰고 피고 지고합니다.

여름은 그렇게 그늘을 키우고 있지만, 그늘은 내 몫이 아니어서 여전히 삶은 치열합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왕충(王充)의 <논형(論衡) 봉우(逢遇)>에 나오는데, 여름에 화로를 올리고 겨울에 부채를 바친다는 말에서 ‘하로동선’이 유래했으며, 철에 맞지 않거나 격에 맞지 않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쓰입니다.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 본래는 철에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아 무용지물을 뜻한다고는 하나 역설적으로 이열치열의 치열함을 느끼게 합니다.

소탕하고 성품이 개결(介潔)했던 문장가 백호 임제(1549~1587)는 “한겨울에 부채 준다고 괴이하게 여기지마라. 너는 나이어려 아직은 모르리라만 임이 그리워 한밤중에 가슴에서 불이 일어날 때면 유월 염천의 무더위가 비길 바가 아니니라.” 고 읊었습니다. 또한 작자 미상의 시(詩)도 부채의 깊은 의미를 더해줍니다. “부채 보낸 뜻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냈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고 어이 끄랴.” 여름에 화로, 겨울에 부채가 불필요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은 오히려 이 세상에 필요가 없는 물건이나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는 가르침까지 새삼 일깨워 줍니다.

수평선엔 흰 구름이 흐르고 여름날의 낭만이 흐릅니다. 여름날의 바닷가 뜨거운 햇살과 소금기 날리는 바람에 여름이 한창입니다. 바람과 새와 나무를 생각하고, 모든 걸 딛고 일어서는 여름 산을 우러러 바라봅니다. 산봉우리보다 구름보다 한층 높은 저 높은 곳으로부터 지고(至高)한 사랑과 자유를 배웁니다. 날씨는 무덥지만, 마주치는 사람들과 꽃과 나무와 한줄기 바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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