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복 정치행정부장

최근 대전지역 대학들이 그야말로 ‘피 말리는’ 나날을 보냈다.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인 대학기본역량진단 보고서 제출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는 평가 대상 대학 중 상위 60%에 들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대전권 대학들도 봉착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역 대학가에 따르면 지난 3월 27일까지 1단계 평가를 위한 대학별 보고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60%의 대학만 살아남는다. 반면 하위 40%의 대학은 정원감축이 불가피하다. 그중에서도 하위 20%는 국가장학금 지원과 학자금 대출도 제한된다.

그래서 대학들은 제출시한 마지막 날인 당일까지 평가항목의 유·불리 분석과 함께 감점요인이 없는지, 빠진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점검했다.

A대학 관계자는 “매일 매일 야근하다보니 집에서 밥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몇달 동안 주말없는 서류와의 싸움에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다.”며 한 숨을 내쉬웠다.

또 B대학 관계자는 “대학 교직원이 되고나서 항상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며 “소숫점 차이로 대학의 명운이 갈리는 숫자들 앞에서 긴장할 수 밖에 없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번 보고서 제출에 이어 4월 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지표에 따른 정량적 수치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학생 충원율 등 단순 정량 수치가 수도권 대학들 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지역대들의 부담은 더 크다. 대다수 대학은 야근과 주말근무로 인한 고단함보다 평가결과가 낮아 대학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컸다. 무엇보다 피하고 싶은 것은 '부실대학'이라는 꼬리표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는 국립대보다 상당히 평가기준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해야 하는 사립대는 교원·교사 확보율과 시간강사 보수 수준 등 여러항목에서 국립대와 차이를 보이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2015년 1주기 평가는 재정 지원을 조건으로 정원 감축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학별 등급을 A등급부터 E등급까지 정해 등급별로 정원 감축 비율이 권고됐다. 4년제 기준으로 A등급은 자율 감축, B등급 4%, C등급 7%, D등급 10%, E등급 15% 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학가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통계 결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내년에 치러지는 2020학년 대학입시부터 대입정원이 고교졸업자(고졸자) 수를 초과하는 ‘대입 역전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신입생을 채우지 못해 문 닫는 대학이 속출하는 사태는 2년 뒤인 2021학년부터 본격화할 전망이다. 2021학년 대입에서는 대입정원이 고졸자 수를 9만 명이나 초과한다. 정원미달이 계속될 경우 재정난이 심화할 수밖에 없어 ‘대학 줄도산’ 사태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가 교육통계에 따르면 내년과 내후년에 대학에 들어가는 현 고2·고1 학생 수는 각각 52만2374명, 45만9935명으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대입정원은 현재 수준이 유지될 경우 55만5041명(2019학년 기준)이다. 2021학년 대입에서는 고졸자보다 대입정원이 9만5106명 많다. 연평균 재수생이 10만명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고졸자 대학진학률이 70%를 밑돌고 있어 대입정원은 10만명 이상 남아돌 것이란 분석이다. 고등학교 졸업후 곧바로 취업하거나 군입대 등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면서 고졸자 대학진학율은 2015년 70.8%를 기록한 이래 2016·2017년 각각 69.8%, 68.9%로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미달 사태는 지방 대학에 직격탄이다. 이데일리가 종로학원하늘교육과 공동으로 교육통계를 분석한 결과 2021학년 대입에서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을 포함한 13곳은 대입정원이 지역고교 졸업자 수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 교수들과 교직원들의 위기로 이어질 전망이다. 사실 대학교수들의 실직 위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대부분 재단이 취약해 등록금에 수입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구조이다. 문제는 대부분 대학들의 신입생 충원률이 하락세를 거듭해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 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일반대학 204개교중 80%에 해당되는 163개교가 이미 신입생 충원 미달 사태를 겪었다. 고등학교 학생수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비율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 27.2%에 불과했던 대학진학율은 2005년 82.1%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 해 68.9%로 떨어졌다.

대학교수들 입장에서는 ‘교육 소비자들’인 대입수험생의 감소로 그동안 어려움을 겪어왔고, 마침내 2020년에는 중대한 분수령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일선 대학교수들은 신입생들이 줄어드는 것을 계기로 삼아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학생 수 감소에 맞춰 교수 숫자를 줄이기보다는 내실을 강화하자는 논리인 것이다.

이제 대학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동안 수도권과 더불어 그래도 신입생 모집이 수월했던 대전권 대학들도 이제 대학도산이 남의 얘기로 치부될 문제가 아닌 듯 싶다. 특히 사립대학들의 위기는 국립대보다 상당히 심하다. 무조건 뒷짐난만 지고 “어떻게 되겠지?”라는 환상속에 빠져서는 사립대학들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제 몇 달 있으면 당장 대학기본역량 평가 결과가 발표된다. 어느 대학은 평가 상위 60%에 속하는 대학이 있을 것이고 어느 대학은 40% 평가 하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평가에 일희일비할 상황은 아니다. 이 대학 구조개혁은 계속 진행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가에도 어느 덧 봄이 왔다. 하지만 마음만은 봄이 온 것 같지 않은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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