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복 정치행정부장

대전시민들이 가을야구를 구경한 지 꽤 오래됐다. 대전에 연고를 둔 한화이글스의 성적 부진이 그 이유다. 한화이글스는 올해도 8위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LG트윈스의 포스트시즌 연속 진출 실패(10시즌·2003~12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한마디로 부끄러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야신’이라고 불리우는 김성근 감독도 한화이글스를 포스트시즌에 단 한 번도 진출 못하고 결국 김 감독은 올 시즌 개막 두 달도 안 돼 자진사퇴 형태로 팀을 떠났다. 지난 2015 시즌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와 함께 ‘불꽃’야구를 선보이며 리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시즌 초, 중반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후반기에 무너지며 한화이글스 팬들의 ‘가을야구’에 대한 염원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후에도 팀 리빌딩(Rebuilding)에 실패하면서 한화이글스는 약체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최근 한용덕 감독을 영입하면서 내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지만 지금 전력으로서는 상당히 어려움이 예상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화이글스는 팀 성적이 부진함에도 우리나라 프로야구팀 10개구단 가운데 ‘서포터즈’가 열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강한화’라는 육성 응원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대전시민들이 야구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를 증명하듯 전국에서도 사회인야구팀이 가장 많이 활동 중이며, 성적도 좋은 편이다. 그런데 대전시민들의 야구사랑에 비해 야구 인프라는 상당히 열악하다. 한화이글스 파크는 새롭게 꾸몄다고는 하나 최신식 시설을 갖춘 타 구단 야구장에 비해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대전지역의 엘리트 야구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는 초·중·고 야구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일각에서는 대전의 열악한 야구 인프라가 한화이글스 성적 부진과 무관하지는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가운데 올해 대전지역 야구계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전제일고등학교가 올 초 국내 고등학교 74번째로 야구부를 창단한 것이다. 그동안 대전지역은 고교야구팀이 대전고 한 군데 밖에 없었다. 고교 야구의 쌍두마차였던 대성고가 팀을 해체하면서 40년 동안 대전고 독주시대가 계속된 것이다.

이 지역서 배출되는 중학교 야구선수들이 대전고로 진학이 안 되면 천안 지역의 북일고등학교나 청주의 청주고, 세광고, 그리고 전북 지역의 전주고나 인상고, 군산상업고 등 타 지역으로 진학하는 형편이었다.그래서 이번 대전제일고 야구부 창단은 대전에서 야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전제일고는 학교 자체에서만 야구부 창단을 한 것이지 정식으로 대전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학교 지정 인가승인을 받지 못했다.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야구장 등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통상 야구부 창단 기본 요건은 규격에 맞는 야구장과 실내연습장, 배팅연습장 등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프라가 없는 대전제일고는 계룡대와 송강 등에 갖춰진 야구장을 사용키로 하고 야구부를 창단 결정을 내렸다는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후 대전제일고는 몇 차례 체육특기학교 지정 인가 승인을 요청했으나, 대전광역시체육특기자위원회(이하 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위원회가 대전제일고 야구부를 체육특기학교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는 대전제일고 재단인 동준학원이 야구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성급히 야구부를 창단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에 동준학원 측은 야구연습장 확보를 위해 3개의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학교와 근접한 대전과학기술대학교와 목원대학교 운동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전제일고는 대전과학기술대, 목원대학교와 학교시설 사용 양해각서를 체결한 계획이다. 둘째는 갑천 부지를 야구 연습장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서구청과의 추진기간, 협의방향, 재원조달방법 등의 후속조치가 필요하다. 셋째는 동준학원이 소유한 대전시 유성구 세동 부지를 활용해 야구장을 만드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위원회 측에서는 대전제일고 야구부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제시되지 못한 점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현재는 대한야구협회(KBO)에서 3년동안 한시적으로 야구운영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후에는 재단 측에서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든 것이 위원회 측의 입장이다. 현재 대전시교육청 측에서는 위원회 측에서 제시한 방안이 충족되면 위원회를 다시 열어 대전제일고 야구부 특기학교 지정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체육특기학교로 지정되지 못하면서 가장 애타는 사람은 바로 야구선수들과 학부모들이다. 자녀가 야구를 위해 대전제일고로 진학했는데, 정식으로 시교육청에서 체육특기학교로 승인하지 않으면서 향후 학생들의 진로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설동호 대전시교육감도 대전제일고 야구부의 특기학교 지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검토해 인가를 해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처리 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명 열악한 대전 야구계의 현실을 봤을 때 대전제일고 야구부의 창단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전고 한 팀으로 운영되던 지역 고교야구에도 라이벌 팀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너무 성급히 야구부 창단에만 급급해 할 것은 아니다.

졸속 창단으로 야구부가 해체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준학원 측에서도 대전제일고 야구부의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지역의 명문 고교야구부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 대전시교육청도 대전제일고의 야구부 창단에 지역민들의 기대도 큰 만큼 체육특기학교로 지정하는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세밑의 한파 속에서도 내일의 박찬호와 이승엽을 꿈꾸며 오늘도 운동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대전제일고 야구부 선수들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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