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복 정치행정부장

지난 5일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필자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제보자는 세종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세종시로 이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제보자의 부인이 세종시 A 고등학교 교사인데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을 깨웠다는 이유로 그 학생으로부터 심한 폭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제보자의 부인은 심한 우울증과 함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부인이 더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여러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학생으로부터 폭언을 당했다는 사실”이라며 “교사로서 받은 수치심과 모욕감에 더욱 힘들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보자의 부인은 현재 병가를 낸 상황이다. 그리고 제보자 부인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학교 측과 세종시교육청의 무성의한 태도다. 이 일이 발생한 후 학교 측은 1주일 후에나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했고, 가해학생에게 내려진 조치는 단순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또한, 이 과정에서 제보자의 부인이 세종시교육청 B장학사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조속하고 명확한 처리를 요구했으나 B장학사는 “교권보호위원회에서 처리할 테니 기다리라”는 퉁명스러운 투로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것이다.

제보자나 제보자의 부인도 세종시로 이사왔을 때는 우리나라 행정중심도시인 세종시에 산다는 자긍심과 부푼 꿈을 안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뉴스에서나 접했던 교권침해를 제보자의 부인이 직접 겪으면서 세종시에 대한 환상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교권침해는 어느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는 있다. 그런데 최근 세종시 신도시지역 학교들을 중심으로 교권침해를 당한 사례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는 소문이 교직원들과 학부모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쉬쉬하고 넘어가서 그렇지 수면 위로 알려지지 않은 교권침해 사례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종시 교권침해 신고는 지난 2012년 11건, 2013년 11건, 2014년 10건, 2015년 14건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학교급별 교권침해 관련 설문 결과 유치원 22.4%, 초등학교 25.0%, 중학교 30.5%, 고등학교 31.8% 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교권침해 사례도 증가했다.

세종특별자치시교육연구원 교육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발간한 ‘교권 침해 실태 분석 및 보호 방안’에 따르면, 세종시 교원들의 교권침해 시기는 1학기 초가 28.9%, 2학기 말에 31.8%가 주로 발생했다.

교원들의 14.4%는 학생에 의한 폭언·욕설·협박, 14.2%는 학부모에 의한 폭언·욕설ㆍ협박, 25.3%는 학생에 의한 의도적 수업·업무진행 방해 및 지도 불응, 13.7%는 학부모에 의한 의도적 수업·업무진행 방해 및 부당한 항의, 15.6%는 학교 관리자의 지나친 간섭에 의해 교권을 침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들의 21.3%는 ‘교권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이에 상응하는 교육정책과 교원정책 수립’, 20.3%는‘교권침해 발생 시, 학교 내에서의 체계적 처리 절차를 위한 제도 보완 및 개선’, 19.9%는‘학생 및 학부모들의 교권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확대’를 교권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응답했다.

이와 함께 교사들의 95.7%는 교직생활에서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학생들과의 생활에 보람을 느끼고 있지만,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교사를 선택하겠다는 교사는 52.8%로 조사되었다. 또한 66.3%의 교사만이 자아존중감이 높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세종시교육청에서는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우선 학교장과 교육청에 보고한 뒤 교권보호위원회를 개최하고, 피해교원에 대한 보호조치도 하는 방안의 매뉴얼이 있다. 또 교권보호지원센터는 교육청 1층에 설치해 전담인력용 사무공간과 상담치유 등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장학관을 센터장으로 업무담당장학사 1명, 업무지원 주무관 1명 등이 배치돼 있다. 또한 법률상담을 위한 상근변호사도 근무해 총 4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교사들이 사후약방식의 형식적인 매뉴얼과 제도적 장치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는 알 수 없다. 당장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이 사실이 밖으로 새지 않도록 쉬쉬하는데 급급한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감안하면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에서도 지난해 8월 4일부터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시행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은 간 곳 없고 교사의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교권침해가 도를 넘었다는 반증이다. 교권침해는 단지 침해를 당한 교사만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고 이를 목격한 학생들과 교사들까지도 오랫동안 심리적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때문에 ‘학교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교권을 회복하는 일은 무너진 교육의 근본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교육의 일차적 목적은 공동체의 건강한 구성원을 길러내는 데 맞춰져야 한다. 교육의 근본목적에 대한 재정립 없이는 교권회복은 불가능하다.

전국적으로도 교권침해로 교사들이 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떠나는 경우가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학창시절을 보낸 1970~1980년대에도 교권침해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욕설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교권침해를 그저 철부지 일부 학생들의 반항심리로 치부하기엔 도(度)를 넘은지 오래다.

세종시교육청도 교권침해에 대한 심각성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명품 행정도시를 만든다는 이유로 겉모습만 번지르한 교육시설 인프라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일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 세종시 일선학교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교권침해 사례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서야 한다. 지금도 학생들로부터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들이 속앓이를 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명품교육도시의 완성은 최신식 교육시설 구축이 아니다. 미래 인재를 키우는데 오늘도 일선 학교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계시는 세종지역 교사 한분 한분임을 세종시교육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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