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열흘간의 긴 추석 연휴가 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명절을 보냈을까요.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전국 관광지를 찾거나, 도심지역에 마련된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연휴 풍경이 연출되었겠지요. 평생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른바 다이아몬드 추석 연휴 풍경을 ‘다시보기’ 해봅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며 정신없이 돌아가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잠시 삶이 뒤뚱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긴 휴일동안 몸의 에너지 센터들이 깨어나고, 우주의 중심에서 무한 회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잠깐 숨을 돌려 그간 미뤄 뒀던 옷장이며 집안 정리에 인심 쓰듯 시간을 듬뿍 내줄 수도 있었습니다.

황금 같은 시간들을 집안에만 가둬둘 수 없어 무작정 떠났습니다. 영광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불갑사로, 증도로, 증도에서 남해로 가는 길. 가을은 크고 투명했습니다. 여름의 습기와 비린내가 빠져나간 산들은 잘 말라있었습니다. 깔끔하게 이발한 봉분들의 이마에도 가을햇살이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붉거나 누렇게 익어가는 것들로 어딜 가든 풍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백수 해안도로에서 바라다본 바다와 하늘은 뒤섞이고 삼투하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핏빛 상사화로 무성했던 흔적들만 잔해로 남아있던 불갑사의 그리움은 헐겁고 서늘하기만 했습니다. 다른 불상들과 달리 남쪽을 향하지 않고, 서쪽을 향해 앉아 있던 부처님의 시선은 오라는 것인지 가라는 것인지, 유혹인지 배척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꽃살문 사이로 쫄깃한 가을 공기의 질감만이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지난여름 무자비한 증발작용이 흰 소금의 앙금을 벌판 가득 깔아놓았을 증도 염전은 흔적 없고, 푸르른 바닷물만이 고요한 잔주름을 만들어내며 염전에 갇혀 있었습니다. 어느 해 겨울인가, 홀딱 반했던 남해 금산의 보리암자. 너무 멀어서 다만, 그리워함으로써 누렸던 그 곳을 향해 가는 달 뜬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남해대교를 건너 금산 푸른 하늘가에, 푸른 바닷물 속에 잠겨있노라니 왁자지껄 시끄럽던 세상이 온통 고요해졌습니다. 보리암자에 다다르니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빛깔을 바꾸어주었습니다.

남해 금산은 여전히 아름다운 바다였습니다. 아득한 섬들과 푸른 물은 들리지 않는 계면조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금산의 바위들은 삶의 불가능을 전설화해서 간직한 채, 모든 바위들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시간의 부재, 언어의 멸절, 삶의 절대적인 불가능, 남해 금산의 바위들은 내게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지리산이 품은 숨겨진 보물 작아서 예쁜 절, 수선사를 끝으로 돌아오는 길은 포개진 산맥의 능선들이 먼 것에서부터 차례로 어둠 속으로 불려가 소멸하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부터 물들어 내려오는 가을산은 나무와 나무 사이의 존재의 핵심부를 버티는 뼈의 향기이고, 떨어져 있는 것들의 간격의 냄새였습니다. 뎅그렁~ 바람 따라 살며시 울던 수선사의 풍경이 다시 들려오는 듯합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추석 연휴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헐겁고 서늘하게 했습니다. 숨결 낮고 사소한 것들에게까지 눈길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육신의 눈으로 가을에 익어가는 것들의 색깔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안단테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간들을 화가가 팔레트위에서 없었던 색을 빚어내듯이 언어를 물감처럼 주물러서 내 풍경의 시간들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비록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은 다르더라도 추석 연휴 열흘 동안 오고 가며 주고받았던 소소한 이야기와 풍경들은 곳곳에서 좋은 추억으로 잘 익어가고 있을 겁니다.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주며 연주해나가야만 한다” 던 그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가고 또 가야 할 길 위에서 시간은 지나간 풍경을 지우며 바람처럼 또 그렇게 스쳐 지나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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