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제571돌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의미를 되새기고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창의적이며 과학적인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이미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류바람이 불면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채택하거나 대학에 한국어과를 개설하는 나라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한글날을 맞아 되돌아본 우리들의 자화상은 자부심보다 부끄러움이 앞서는 게 현실이다. 국적불명의 신조어와 합성어가 난무하고 비속어·외래어가 넘쳐나면서 우리말과 글이 몸살을 앓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 등 젊은 층의 한글 파괴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체모를 줄임말과 신조어가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대 간 소통단절이라는 부작용마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맘충’ ‘지잡충’ 등 단어 뒤에 충(蟲)자를 붙여 특정 사람이나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은 한글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TV방송에서도 시청률을 의식해 상당수 연예·오락프로그램이 우리말 파괴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글사랑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의 한글 훼손도 도를 넘었다.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공기업 등의 홈페이지·홍보자료 등을 보면 외래어나 어려운 한자어를 쉽게 볼 수 있고, 한글 설명 없이 영어약자를 쓰는 사례도 흔하다. 지자체의 사업명에도 온통 영어투성이다. 스타트업, 클러스터, 크리에이티브팩토리, 테크노파크, 콘텐츠코리아랩, 유비쿼터스 등 도무지 뜻을 이해하기 힘든 외래어를 습관적으로 쓰고 있다. 이러한 공공기관의 외래어 남용은 행정의 이해도를 떨어뜨리고 외국어를 모르는 주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개선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어기본법에도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올해로 광복 72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그동안 많이 순화됐다고는 하지만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산업현장·교육계·법조계 등에는 일본말이나 일본식 한자어가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2014년 고려대 이한섭 명예교수가 펴낸 책을 보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들어온 어휘가 3천634개나 된다. 흔히 한 나라의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얼이자 정신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루속히 우리 언어속의 일제 찌꺼기를 걷어 내고 우리말과 글을 다듬는 것이 제2의 광복이며 혹독한 일제치하에서 한글을 지킨 선조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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