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푹푹 찌던 불볕더위와 폭우가 저만치 물러가고, 청명한 하늘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맞이합니다. 밤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면서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백로를 지났으니 흰 이슬 맺으며 가을이 깊어가겠지요.

톨톨한 가을볕에 더덕 꽃은 울타리에 종소리로 매달려 있고, 백일홍은 씨방을 키우고, 기다란 대궁에 늦 옥수수수염이 말라갑니다. 여기저기 여물어가는 소리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지난 일요일엔 새벽 출근 걱정 없이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너무나 밝고 환한 겁니다. 까슬까슬한 바람과 파란 하늘에 부서지는 햇살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미당 서정주 시인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시(詩)가 송창식의 노래 가락으로 들려왔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중략>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한 초가을 볕 따라 어딘가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부랴부랴 채비해서 선운사에 갔습니다.

한창일줄 알았던 꽃 무릇(상사화)은 아직 흔적 없고, 목(木)백일홍만이 대웅전 앞을 고즈넉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깊어서야 비로소 피는 꽃. 다른 꽃 다 폈다 져도 백일 동안 지지 않고 버티는 붉은 꽃잎들이 대견했습니다.

대웅전 앞 다원(茶院)에 앉아 잎차 한 잔 기울이며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소리까지 마셨습니다. 엉켜있던 머릿속은 허술하게 풀어지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하늘에 막힌 숨이 탁 트였습니다. ‘마음이 쉬는 그 곳에 진짜 쉼이 있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아주 오래전 구인사에서 온 가족이 템플스테이를 하던 그 때, 스님이 전해주시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의식을 행하는 모든 행위에 나를 넣으세요. 공양하는 나, 차를 마시는 나, 걷고 있는 나, 그러면 나를 놓칠 일이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세요.”


‘꽃인가 하면 나무이고 나무인가 하면 꽃이다.’ 배롱나무 이야기입니다. 백일홍 나무에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여느 꽃은 피어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열반에 들거늘 어찌 몽환의 꿈을 꾸어가려 하는지. 환상의 자태가 터득해낸 고운 빛이 해탈의 경지에 넘나들며 고독하고 초라한 길손을 한없는 사색으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목 백일홍의 고운 빛에 빠져 있다가 문득, 내 앞에 놓인 소 여물통 같은 인생을 바라보던 오후. 천양희의 ‘나는 기쁘다’ 시(詩)를 만났습니다.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와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 나는 기쁘다. 중략> 시인은 기쁨이라는 게 뭐 대단한 지점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새삼 알려주며 기쁨 찾는 법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비트(Bit)화되고 파편화되어 생성과 소멸이 정신없이 반복되는 디지털 시대지만, 아날로그적인 삶에서 기쁨을 찾아 나누며 나를 놓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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