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빚탕감 대책을 또 내놨다. 개인이 신용보증기금 등 6개 금융공공기관에 지고 있는 부실채권이 대상이다. 6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공공기관 부실채권 관리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이들 기관에 1년 이상 빚을 연체한 저소득층에게 원금을 최대 60%까지 감면해준다. 재산이 200만원 이하이거나 70세 이상인 채무자는 연체한 지 5년이 지나면 채권 시효를 연장하지 않고 전액 탕감해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부 대책의 취지는 이해가 간다.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자는 빚을 줄여서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 부실채권은 24조9000억원에 달하며, 관련 채무자 수는 71만8000명이나 된다. 이들 가운데 소득, 나이, 직업 등을 기준으로 상환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빚을 탕감해주고 나머지는 갚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기에 가장 먼저 충격을 받게 될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 말 현재 1344조원으로 불어난 가계부채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저소득 다중채무자 등 금융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는 부실채권 관리 효율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아무리 저소득층이라도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돈을 빌린 사람은 원리금을 제때 갚는 것이 금융의 기본원칙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서 원칙을 허물면 '빚을 안 갚으면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게 된다. 개인 부실채권이 양산되고 있는 것은 불황의 탓도 있지만 정부가 빚 탕감 대책을 남발한 부작용이기도 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는 또다시 선심성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는 신용불량자 150만명의 사면과 부채탕감, 법정이자율 인하를 약속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신용카드 연매출 5억원 이하 가맹점의 수수료를 1.3%에서 1%로 낮춰주겠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측은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낮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결국 신용질서를 훼손해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빚을 탕감해주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는 선행일 수 있다. 그러나 빌린 돈을 제때 꼬박꼬박 갚은 사람들과의 형평성에는 어긋난다. 금융의 기본원칙을 성실히 지킨 다수의 사람들에게 손해 봤다는 느낌을 주면 금융질서는 무너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점을 인식해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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