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어떤 방식이 됐던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설레고 홀가분해지는 일이다. 지난 달 말, 십여 일 국외 출장을 다녀왔다. 웃어른과 함께 하는 자리라서 이모저모 조심스럽고 마음이 가볍진 않았지만 일상을 떠난다는데 더 큰 의미를 뒀다. 나는 제법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여행은 좋은 멈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떠나면서는‘다녀와서 뭘 해야지’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롯이 그 시간을 즐길 뿐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다녀오면 신기하게도 다음 길이 보이곤 했다. 미리 계획하거나 궁리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번 출장도 여행길로 간주했다. 해외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휴대폰을 최대한 만지지 않으려 애썼다. 한국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버리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냥 흐르기로 했다. 편해지기로 했다. 눈총도 엽총도 없이 꿈꾸는 자의 발걸음처럼 그렇게 가볍게. 목에서도 힘을 빼고, 심장에서도 힘을 빼고 천년짜리 장자(莊子)의 물이 내 옆을 흘러가게 놔두었다. 세상 소식과 조금이라도 단절된 채 무심히 지내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근육을 기르는 운동이라 생각했다. 다소 혼곤했지만, 바삐 돌아가는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멈춤의 시간이 돼 줬다.

하루 중 얼마나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아니, 멈춤의 기회를 얼마나 만들어 내면서 살고 있는가. 멈추면 틈과 우연이나 여백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게 쉽질 않다는 거지.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쫓기듯 사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자신의 온전함과 존귀함을 알아챌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건넨다. 투자의 신 워런 버핏의 아들 피터 버핏은 <워런 버핏의 위대한 유산>에서 “우리는 누구나 심사숙고해서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 자기 내면을 신중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중도에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개인이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다.”라고 전한다.

하루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지 않다. 요즘처럼 찌는 듯한 무더위에는 화나고 스트레스 쌓이고 짜증나는 일도 다반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좋다. 빠져 나가려 안간힘 쓰기보다는 멈추어 가만히 바라보는 내려놓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호흡을 가다듬고 숨고르기를 하면서 말랑말랑한 힘을 비축해야 한다. 그런데, 멈추면 무슨 큰 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바쁠수록 한 호흡 멈추어보라’던 말을 되새김해 본다. 말을 타고 달리다 내 영혼이 잘 따라오는지 돌아보기 위해 잠깐 멈추어 서는 인디언처럼. 그래야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볼 수 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가끔 떠나라. 떠나서 잠시 쉬어라. 그래야 다시 돌아와서 일할 때 더 분명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면 판단력을 잃게 되리니”라는 다빈치의 말처럼 적절한 멈춤의 시간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다. 조화와 균형을 찾기 위한 삶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인생은 분명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빠름이 아니라 바름이다. 가끔은 고요한 물 앞에 멈추어 서서‘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깊어져 보는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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