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교육청 장학관

어느새 오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제 유월, 단오 지나고 하지 넘으면서 계속 더울 일만 남았는데 큰일이다. 무성해진 숲을 바라보며 화가 모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러나 결국 그를 실명(失明)의 고통에 빠뜨린 빛에 대해 생각한다. 생(生)이란 어쩌면 이토록 가혹한 건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왜 가장 큰 아픔을 주는지를 묻는다.

피천득 시인은 <오월>의 끝자락에서‘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오월이 가고 유월이면 목필균 시인의 <6월의 달력> 이 떠오른다.‘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한 해의 절반. 책갈피 귀퉁이 접어놓듯이 다시 마음을 단단히 접어보는 달. 유월엔 우리 조금 천천히 가보자구요. 욕심도 아쉬움도 반으로 접고 차근차근 그렇게 가보자구요.

유월은 무엇보다 향긋한 풀내음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뒷산에서는 보라색 칡꽃이 손톱만 하게 피고,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 꽃이 피어난다. 눈부신 아침햇살에 출렁이는 넝쿨장미가 말을 건넨다. 자르르 초록바람 가지에 걸쳐 놓고 마디마디 꽃 잔치로 허공이 뜨거워진다. 진정 저렇듯 피어 볼 일이다. 향기로운 입술로 어느새 담을 덮는 유월의 눈동자. 누군가는 작물들이 꽃을 걸고 줄기를 세워 잎을 넓히고 뿌리를 곧게 잡는 시간이 유월이라 했다. 나는 그런 유월을 만물이 슬그머니 평화를 짓는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유월은 또 잊었던 아픔이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때가 되면 도지는 가슴앓이처럼 이 맘 때면 초록이 슬픔으로 다가온다. 하얀 망초 꽃은 계절을 알아차린 듯 소복을 하고 산과 들을 덮는다. 수선스럽지 않고 조용조용하다. 흰 구름은 하늘로 둥둥 떠가고 계곡의 물소리와 초여름 산의 푸른 산그늘이 마을로 내려온다. 미풍에 날리던 꽃들의 향기는 그리움이 되어 날아간다.

봄이 오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사라졌다. 지금은 이미 여름이다. 날씨야 어찌 됐든 봄이 가는 이야기에 딱 맞는 시가 있다. 김용택의 <그랬다지요> 는 딱 지금 계절을 담고 있다. 이때에 읽는 안성맞춤 시다.‘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그랬다지요’오는 듯 마는 듯 그렇게 봄이 왔고, 봄이 가는 이야기다.

사는 게 이게 아닌 데라는 탄식이 들어있다. 세상에 바라는 삶을 그림처럼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게 아닌데 하면서 아침을 맞고, 내가 바라던 삶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이게 아닌데’흔들리는 사이에 봄날은 왔고,‘이게 아닌데’좌절하는 사이에 봄날이 가 버렸다. 나만 그랬을까. 오월과 칠월 사이에 숨어 지내는 듯한 유월.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고 구름이 치자 꽃보다 흰, 그 오목하고 조용한 유월에는 숲을 닮은 마음으로 흙을 닮은 가슴으로 살아야지. 풀과 벌레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환한 물소리에 몸을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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