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봄은 봄이로소이다. 꽃샘추위를 청산한 봄빛 고운 삼월이다. 나무마다에 꽃망울이 터지고, 새순들이 움 솟는다. 둘러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곁에 있다. 주말에 봄맞이 마당 청소를 했다. 긁고 뽑고 다지고 반나절 이상 공을 들였지만 그렇게 크게 표 나진 않았다. 시골 단독에 살며 늘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치우고 정리해도 그저 그렇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덜 뽑고 덜 정리된 채로 사는 법을 나름 터득해 그냥 즐기고 있다.

봄빛에 졸고 있는 담장 아래 작은 꽃씨를 감추고 물을 주었다. 잊은 듯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연두 빛 새잎 물고 흙이 일어나겠지. 솔바람 살금살금 봄빛 안고 말갛게 씻은 햇살 따라오는 봄 이야기들로 우리 집 작은 뜰도 수런댈 것이다. 지금도 산수유, 청매화 아래로 이름 모를 작은 꽃잎들이 자꾸만 시그널을 보낸다. 내가 숨 쉬는 곳곳에 수많은 생명들이 나를 향해 있다고. 겨울을 잘 견뎌 낸 힘이 절로 나를 이끈다.

작은 뜰에서 햇빛과 바람이 파죽지세로 내 가슴에 들어온다. 청매의 향기를 깊이 들이마신다. 향기로우면서 교교하고 교교하면서 차갑다. 따스하고 보드랍고 까슬까슬한 이른 봄의 햇살이 노랗게 손바닥을 적셔온다. 바로 이런 소소한 것들이 내 삶의 방부제 역할을 담당한다. 구지 내 삶의 철학을 하나 들어 강조하자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는 것들 속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지금 나와 행복은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것이다. 미래에 노심초사하지도 과거에 연연하지도 않는 오로지 지금 여기에 깨어 맑고 고요한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스스로 행복한 사람>에서‘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이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다. 가까운 것이 먼 것을 설명한다. 한 방울의 물은 작은 바다이다. 한 명의 사람은 자연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평범한 것들의 가치를 인식하면,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사랑도 그렇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다. 꿈과 희망도 저 멀리 강 건너에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내 발 밑에 그 씨앗이 있다.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 것 안에서 내 모든 운명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혜민 스님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 내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두말 할 것도 없이 가장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현실적이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대답이다. 버디 드실바와 류 부라운이 작사한 브로드웨이 뮤직컬 ‘굿 뉴스’에 나오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공짜다.’ 라는 히트곡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행복은 값비싼 재물이 아니라 간단한 즐거움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보름달이나 불타는 석양, 향기로운 봄꽃들 그리고 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돈들이지 않고 감상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아팠기에 건강의 소중함을, 혼자였기에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실연당했기에 진정한 사랑의 소중함을, 멀어졌기에 세상 사람들의 따스한 손길에 소중함을 느껴보는 그런 소중한 날이, 그날이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수다스러워진 햇살이 분홍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유혹하는 바람이 꽃잎을 스치며 지나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성 에세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도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늘 우리 주변에 있다는 말을 하고팠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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